이지혜 변호사 “탄소국경조정, WTO 무역협정 산 넘어야”

환경일보와 법무법인(유) 지평 그리고 (사)두루는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발전, 자원순환 등 환경 분야 제반 이슈에 관한 법‧정책적 대응과 환경 목표 구현을 위해 ‘지평‧두루의 환경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변호사로 구성된 필진은 환경에 관한 법률을 좀 더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분쟁사례, 판례, 법·정책 등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편집자 주>

이지혜 변호사 leejh@jipyong.com
이지혜 변호사 leejh@jipyong.com

[환경일보] 미국 바이든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탄소조정세(Carbon Adjustment Fee) 적용에 다시금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아직 탄소조정세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한 것이 아니므로, 바이든 정부가 고려하는 탄소조정세의 모습과 실제로 이를 도입하였을 때의 효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환경정책에 가장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연합(EU)은 2019년 12월11일 발표한 유럽그린딜 전략 중 하나로 탄소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을 제시한 바 있고,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현재 그 세부사항은 EU 집행위원회가 준비 중입니다.

미국과 EU는 과거에도 탄소조정세 또는 탄소국경조정(이하 총칭하여 ‘탄소국경조정’)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몇 차례 했는데, 행정적·법적 문제 등으로 도입에는 실패했습니다.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계속 논의되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은 무엇이고, 그 도입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탄소조정세가 논의되는 이유는 국가마다 기후변화 정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27개의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담했습니다. 이후 파리협정 체제는 모든 당사국에 탄소 감축 의무를 부과하지만, 구체적인 탄소 감축 수준과 방법은 당사국의 선택사항으로 남겨둡니다. 따라서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든 파리협정 체제에서든 탄소누출이 발생할 우려가 계속해서 존재합니다.

탄소누출이란 개별 국가나 지역이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강화하는 경우 그 국가나 지역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생산 활동을 하는 기업이 역외로 이전하거나, 수입을 통해 역내의 생산 활동을 대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탄소누출이 생기면 한 국가의 온실가스 감소가 다른 국가의 온실가스 증가로 상쇄돼 국제적인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엄격한 환경규제를 받는 국가의 국내 사업자와 덜 엄격한 규제를 받는 외국 사업자 간의 불공정한 경쟁도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높게 요구되는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탄소국경조정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돼 왔습니다.

탄소국경조정은 탄소국경세와 배출권거래제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습니다. 탄소국경세는 국산품에 부과한 탄소세를 수입품에도 부과하거나, 국산품 수출 시에 이미 부과한 탄소세를 환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배출권거래제를 통한 탄소국경조정은, 국산품에 배출권거래제가 적용되는 경우 수입품도 그와 같은 배출권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고, 탄소세의 도입은 현재 검토 중입니다.

그런데 탄소국경조정은 국제무역을 전제로 해서 무역 상대국에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습니다. 미국과 EU의 탄소국경조정 도입 제안에 대해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무역장벽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탄소국경조정의 이 같은 측면에 따라, 탄소국경조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세계무역기구(WTO) 무역협정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Subsidies and Countervailing Measures Agreement, SCM) 등에 부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탄소국경조정이 넘어야 할 WTO 무역협정의 산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탄소세의 국경조정을 위해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면, 상품이 어느 나라로부터 수입되든지 상관없이 동종 제품에 대해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최혜국대우 원칙, GATT 제1조)과 국산품이나 국내업체 보호 차원에서 수입품에 세금이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내국민대우 원칙, GATT 제3조)을 위반하는 소지가 발생합니다.

수입업체에 배출권 제출의무를 부과하는 국경조정의 경우 배출권 구매비용의 성격이 무엇인지(조세인지, 과징금인지 등)에 대한 규명이 우선돼야 하고, 그 성격에 따라 탄소세와 마찬가지로 GATT의 일반원칙을 위반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국내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배출권을 무상할당하면서 수입품에 배출권 제출의무를 부여하면 SCM을 위반할 여지도 생깁니다.

이처럼 탄소국경조정에 관한 국제통상법적 난관이 있어, 탄소국경조정 도입을 논의하는 국가들은 WTO 무역협정을 포함한 국내법 및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는 구조의 탄소국경조정을 고민하는 상황입니다. 바이든 정부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예상합니다.

탄소국경조정이 도입·시행되면 우리나라 무역과 환경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바이든 정부와 EU의 탄소국경조정에 관한 논의 과정을 유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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