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두루 김성우 변호사

환경일보와 법무법인(유) 지평 그리고 (사)두루는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발전, 자원순환 등 환경 분야 제반 이슈에 관한 법‧정책적 대응과 환경 목표 구현을 위해 ‘지평‧두루의 환경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변호사로 구성된 필진은 환경에 관한 법률을 좀 더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분쟁사례, 판례, 법·정책 등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편집자 주>

김성우 변호사 kimsw@jipyong.com
김성우 변호사 kimsw@jipyong.com

[환경일보] 미국 소비자 공익연구 단체인 US PIRG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인류는 연간 100억 개의 스마트폰과 27억5000만 개의 노트북을 생산하고 있고, 5억9000만 톤의 전자제품을 버리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양의 전자 폐기물은 썩지도 않고 폐기 과정에서 배출되는 배터리 처리의 위험성 등으로 인해 환경 오염의 중요한 한 축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화두로 떠오르는 주제가 바로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이다. 수리할 권리란 소비자가 구매한 제품을 스스로 수리해서 계속해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유럽환경국(European Environmental Bureau)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럽 내 모든 스마트폰의 수명을 1년 더 연장할 경우 2030년까지 매년 210만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포함한 다양한 전자제품들을 손쉽게 이를 수리해 더 오래 사용한다면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양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가 자기가 소유한 물건을 수리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내용이 ‘권리’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전자제품을 제조하는 제조업체들이 그 ‘당연한’ 권리를 소비자들에게 허락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들은 자사 제품 수리 시 필요한 부품, 수리 매뉴얼 등을 제조업체 기반 서비스센터에서 독점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DIY로 제품을 수리하거나 제조업체 기반 서비스센터가 아닌 사설 수리업체에서 합법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소비자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제조업체 기반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맡기거나, 수리 자체를 포기하고 새 제품을 구입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전자제품 수리 프로세스는 전자 폐기물이 증가하는 것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1년 기준 미국에서는 총 27개의 주에서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각 주마다 수리할 권리 대상 장비 및 기기가 의료기기, 농작 기구, 가전제품 등으로 상이하나 공통된 주요 내용은 전자제품의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정보, 기기, 부품, 수리 매뉴얼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조업체들은 ‘DIY로 수리하거나 사설 수리업체에 의해 수리를 하게 되면 전자제품의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핵심 논거로 위 법안들에 대해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소비자들이 전자기기를 수리해 사용할 권리를 확보할 것을 촉구하고 전자기기 제조업체들의 수리 제한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행정명령에 따른 위원회의 정책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로써 미국 내에서 수리할 권리에 대한 미국 내 확산이 더욱 탄력을 받을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2016년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전자 폐기물 발생량은 66.5만 톤이며 1인당 배출량은 13.1KG이다. 이는 순위로 따져보면 세계 15번째이고, 1인당 배출량은 세계인 평균의 2배를 넘는 수치다. 즉, 우리나라 역시 전자 폐기물의 배출량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수리할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다. 우리나라 역시 상당수의 제조업체들이 사설 수리업체에 의한 제품 수리를 금지하고 있고, 자사 제품을 사설 수리업체가 수리할 경우 보증 혜택을 중지하거나 수리가 불가하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수리할 권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리할 권리는 단지 전자 폐기물을 줄인다는 측면 외에 소비자들의 알 권리, 소유권에 대한 온전한 행사 등 다양한 권리와도 연관을 맺고 있다. 다만 환경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수리할 권리를 본다면,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되는 전자제품을 수리의 곤란함으로 인해 버리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측면에서 수리할 권리의 보장은 환경 오염 방지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지구의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수리할 권리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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