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변호사 “현행 상법상으로는 주주제안과 주주총회소집청구 형식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환경 경영을 요구하는 주주의 목소리가 다각도로 커져갈 것”

환경일보와 법무법인 지평 그리고 (사)두루는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발전, 자원순환 등 환경 분야 제반 이슈에 관한 법‧정책적 대응과 환경 목표 구현을 위해 ‘지평·두루의 환경이야기’ 연재를 마련했다. 변호사로 구성된 필진은 환경에 관한 법률을 좀 더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분쟁사례, 판례, 법·정책 등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편집자 주>

이지혜 변호사 leejh@jipyong.com
이지혜 변호사 leejh@jipyong.com

[환경일보] 지난 2021년 6월 미국 최대의 정유회사인 엑손모빌의 주주총회에서는 그야말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엑손모빌의 지분을 0.02%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은 행동주의 펀드 엔진넘버원이, 자신들이 지명한 환경파 3인이 엑손모빌의 이사로 선임되도록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엔진넘버원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와 같은 거대 투자자들이 엔진넘버원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유럽 및 미국 주주총회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계획과 전략 등에 대해 주주들의 찬반 의사를 확인하는 주주 권고 투표(Advisory Vote)인 ‘Say on Climate’가 주목받고 있다.  Say on Climate를 도입한 최초 사례로 꼽히는 스페인 항공사 Aena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헤지펀드인 TCI가 주주총회에서 (1) 2022년 주주총회에서부터 상세한 기후변화 대응 계획과 진행 상황을 공시하고 주주의 권고적 찬반 투표를 받을 것과 (2) Say on Climate을 반영하는 것으로 정관을 변경할 것을 주주제안 하였다. TCI의 주주제안에 대해 Aena 이사회가 찬성 입장을 밝혔고, 블랙록, ISS 등 주요 투자자가 이를 지지하면서 주주총회에서도 가결되었다. 이후 유니레버, 네슬레, 글렌코어 등 글로벌 기업이 자발적으로 Say on Climate 도입을 약속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환경 경영을 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가 회사에 제안을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첫째는 주주제안이고, 둘째는 주주총회 소집청구이다. 주주제안이란 일정 지분 이상을 가진 소수주주가 주주총회 6주 전에 이사에게 주주총회 목적사항을 제안할 수 있는 제도이다. 주주제안이 있을 때 이사는 그 제안을 이사회에 보고하여야 하고, 일정한 사유가 없으면 이사회는 해당 안건을 주주총회의 목적사항으로 해야 한다. 여기서 이사가 주주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일정한 사유란 ① 주주제안의 내용이 법령 또는 정관을 위반하는 경우 ② 부결되었음에도 3년 내 다시 제안하는 경우 ③ 주주 개인 고충에 관한 사항인 경우 ④ 주주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일정 비율을 초과하는 주식을 보유해야 하는 소주주주권에 관한 사항인 경우 ⑤ 상장회사 임원 해임에 관한 사항인 경우 ⑥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사항이나 제안 이유가 명백히 거짓인 경우 또는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항인 경우이다.  

주주총회소집청구란 일정 지분 이상을 가진 소수주주가 회의의 목적사항과 소집의 이유를 적어 이사회에 제출하여 임시주주총회의 소집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사회가 주주의 요청에 응하지 않는 경우 주주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주주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행 상법 하에서는 주주가 환경 경영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환경 전문가인 이사를 선임할 것을 제안하거나 환경 경영에 관한 내용을 정관에 추가할 것을 제안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건물 붕괴 사고로 사회적 논란이 된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해 그 주주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이 정관에 지속가능경영체계 전문을 신설할 것을 주주제안 한 것이 유사한 예이다. 물론, 주주가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사 또는 이사회와 소통을 하며 주주가 제안하고자 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방안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와 같은 주주의 ‘목적을 가진 대화(engagement)’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주주의 제안이 ‘권고적인 효력’을 갖는 주주 권고 투표나 주주제안이 가능할까? 현행 상법 하에서 주주제안 또는 주주총회소집청구를 통해 주주의 제안이 주주총회의 목적사항이 되었을 때, 그에 대한 결의는 구속적이다. 즉, 가결되면 그 가결의 효력이 발생하고 부결되면 회사가 그에 따를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제도를 개선하여 주주 권고 투표 또는 권고적 주주제안 등 주주의 제안이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상법에 이사가 주주의 제안을 거절할 사유가 한정적으로 열거되어 있으므로 현행법만으로도 주주가 충분히 주주제안제도를 활용할 수 있고, 권고적 주주제안까지 도입한다면 주주가 회사의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할 우려가 있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제도적으로 주주의 권고적 의사 표현 절차가 마련될지 여부와 별개로, ESG 시대에 주주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으며 특히 E와 S 분야에서의 요구사항이 많아질 것은 자명하다. 회사는 유연한 태도와 ESG 관점에서의 경영 실천으로 주주의 의견표명에 현명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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