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 박성철 변호사

박성철 변호사 scpark@jipyong.com
박성철 변호사 scpark@jipyong.com

[환경일보] 환경 오염과 훼손을 예방하려는 환경정책기본법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적정하게 지속가능하도록 관리하고 보전하고자 한다. 제44조 표제는 환경오염의 피해에 대한 무과실책임이다. 원인자의 무과실책임이다. 조항을 읽어보면,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의 원인자가 그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민법의 특별 규정인 셈이다. 

통상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증명책임은 청구인이 부담한다. 가해자의 가해행위, 피해자의 손해발생,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피해자가 오롯이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등 공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대법원은 위 환경정책기본법 조항을 들며 증명책임을 달리 본다. 피해자에게 인과관계의 존재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게 되면, 공해로 인한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에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원인을 조사하는 편이 훨씬 쉬운 때가 많다고 본다. 더구나 가해자는 손해발생의 원인을 은폐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가해자가 어떤 유해한 원인물질을 배출하고 그것이 피해물건에 도달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가해자 측에서 그것이 무해하다고 증명하지 못하는 한 가해행위와 피해자의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논리로 피해자의 증명책임을 대법원이 완화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경마공원 소금 누출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마장 경주로에 뿌려진 소금으로 인근 농원의 분재와 화해가 고사했는지 다툼이 되었다. 경주로에 있는 모래 결빙을 방지하려 겨울철마다 많은 소금이 뿌려졌다. 경마공원 주변 화훼단지에서 사용된 지하수 염소이온농도는 농업용수 수질기준인 250mg/L을 초과하거나 이에 근접한 수치였다. 

법원은, 살포된 소금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과천시 주암동 부근의 지하수는 경마공원 북쪽에서 화훼단지가 위치한 곳을 지나 양재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다량의 소금 유입은 화훼단지에서 사용되는 지하수 염소이온농도의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증명책임을 경감시키면서도 대법원은 적어도 가해자가 어떤 유해한 원인물질을 배출한 사실, 해로운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다는 사실, 그것이 피해물건에 도달한 사실, 그 후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사실에 관한 증명책임은 여전히 피해자가 부담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경마장 근처 온실 속 분재가 고사된 또 다른 사건에서는, 참을 한도를 넘는 정도의 염소 성분이 배출되어 온실에서 분재를 재배하는 데 사용한 용수에 도달함으로써 분재가 고사하는 등으로 훼손된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하여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한 예도 있다.  

환경소송에서 인과관계 증명책임이 완화되는 배경으로는 환경오염의 사회성·정치성 때문에 감정인이 인과관계 판단을 회피하는 경향도 언급된다. 과학기술이 복잡하게 발달하면서 사실 해명이 곤란해진 부담을 피해자에게 떠안게 하면 그러한 점에 책임이 없는 피해자에게 가혹하다는 사정도 고려된다. 

증명책임 경감은 환경오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쉽지 않은 현실에 터 잡아 형평의 원칙에 따라 작동된다. 피해자는 증명책임을 덜게 되면서도 그 부담을 완전히 내려 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