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이 부족한 예산‧인력‧장비로는 화재예방 한계

[환경일보] 지난 4일 시작된 울진·삼척 산불은 213시간 43분(13일 오전 9시 기준)만에 주불이 진화됐다. 산불이 휩쓴 면적은 2만923㏊, 서울시의 3분의 1이 넘는 면적이 불탔다.

지금까지 가장 피해 면적이 넓었던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2만3794㏊)의 피해 규모를 뛰어넘는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6년 이후 단일지역 산불로 최장 기간, 최대면적 피해를 기록했다.

울진삼척 산불이 이렇게까지 커진 원인은 유례 없는 겨울 가뭄에 있다. 울진을 비롯한 경북과 강원동해안은 작년 12월부터 3월초순까지 극심한 건조를 겪었다.

대구지방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겨울철(2021년 12월 ~ 2022년 2월) 대구·경북 강수량은 6.3㎜(평년 대비 –67.5㎜, 7.1 %에 해당)로 역대(1973년 이후) 가장 적었다.

산불의 진행속도와 전개 양상은 건조한 기후가 산불 대형화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초 발화 현장이 담긴 CCTV영상을 보면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지 불과 7분여만에 산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은 빠른 속도로 확산돼 20분 뒤 소방차로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53분 후에 도착한 진화 헬기로도 초동진화는 역부족이었다.

산림청은 초동진화를 위한 산불진화헬기 출동 기준시간을 50분으로 설정하고 전국 모든 곳에 50분안에 헬기가 출동할 수 있도록 대응하고있다. 하지만 유례없는 가뭄 앞에서 지금까지의 기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울진삼척 화재 현장 /사진제공=녹색연합
울진삼척 화재 현장 /사진제공=녹색연합

유례 없는 가뭄에 순식간에 번진 산불

산불 전개 양상도 기존 대형 산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기존 대형산불이 강풍의 영향으로 수관화(소나무림의 수관부를 태우면서 불이 날아다니듯 타들어가는 산불)를 형성했다면 이번 산불은 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한 3월 5일 오전부터 대부분의 화선에서 지표화(산림의 바닥 또는 토양층을 태우면서 전개되는 산불)가 이뤄졌다.

지표화는 토양의 수분 함량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장기간 이어진 가뭄으로 낙엽과 토양이 극도로 말라 있었고 불길은 바람이 약한 날에도 지표면을 타고 빠른 속도로 번졌다.

지표면에 번진 불이 토양층 아래 얼어있던 수분을 급속하게 증발시키면서 엄청난 양의 연기까지 발생했다. 다량의 연기를 동반한 지표화가 9일 동안 이어지며 산불 진화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높은 고도도 산불진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대형산불은 주불의 화선이 해발 300~600m의 고도에서 전개됐다.

2017년 5월 강원도 삼척 도계 건의령 일대 해발 890m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높은 산불이었다.

그러나 이번 울진삼척 산불은 발생 5일째인 3월 8일부터 해발 800m가 넘는 고도에서 화선이 형성돼 불길이 번져 나갔다.

특히 마지막 3일 동안은 응봉산을 중심으로 해발 1000m까지 불이 번졌고 험산준령에서 화선을 잡기 위한 악전고투가 이어졌다.

고도가 높다는 것은 진화인력과 장비의 접근과 어려움을 가져다 준다. 고산지역의 지형을 고려한 산불진화메뉴얼을 만들고 헬기부터 산불진화차량 그리고 진화 조직과 인력까지 새로운 차원에서 준비를 해야 한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한가운데서 대형산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울진‧삼척 산불 같은 대형산불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불 예방을 위한 인력과 장비가 현실적 대응 수준으로 마련될 수 있도록 산불예방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20년 산림청에서 산불예방 명목으로 지출한 예산은 약 2005억원으로 전체 예산중 6.7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산림면적은 2020년 기준 629만㏊로 산림 1㏊당 산불예방을 위해 사용된 예산은 약 3만2000원이다.

산불예방관련 예산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대를 유지하다가 2017년 산림재해일자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6%대로 올랐다.

연기 사이로 진화 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녹색연합
연기 사이로 진화 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녹색연합

과학자들의 전망 “초대형 산불, 더 많아질 것” 

전 세계 과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대형산불이 더욱 자주, 강도높게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2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기후위기로 인해 대형산불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그에 따른 산불예산의 대대적인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최근 미국, 호주,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초대형산불이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30%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구자들은 기존 방식으로는 진압되지 않는 강도의 산불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화재 조건이 급격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산불대응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산불예산의 절반 이상을 계획 및 예방, 준비에 투입할 것을 제언했다.

지상진화 역량 강화도 시급하다. 현재 인력 규모와 운영방식으로는 대형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다.

산불 발생 시 현장에서 주불과 맞서는 전문인력은 현재 산림청 산하 특수진화대와 공중진화대를 비롯해 지방산림관리청 및 국유림관리소에 소수 인력이 담당했다.

이중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전체 인원 중 63%가 여전히 10개월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산불처럼 고산지역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한다면 전문성을 갖춘 훈련된 진화인력이 필요하다.

매년 1만2000여명의 산불감시원이 고용되고 있지만 국토의 64%가량 되는 산지를 모두 담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산림지역의 비율과 소나무림의 비율을 고려해 대형산불의 위험이 높은 곳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감시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

진화 작업을 수행중인 산불특수진화대 /사진=녹색연합
진화 작업을 수행중인 산불특수진화대 /사진=녹색연합

특히 강원도 영동지역과 경북 동해안권에 현재의 감시인에서 3~5배 가량 산불감시인을 늘려야 할 것이다.

산불을 좀 더 효율적인 감시할 수 있는 CCTV 등의 과학적인 감시 장비도 늘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감시인과 감시장비를 좀 더 효율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산불 감시 체계의 고도화가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후위기 상황에 맞는 산불진화메뉴얼을 만들고 헬기부터 산불진화차량 그리고 진화 조직과 인력의 접근과 전개까지 새로운 차원에서 준비를 해야 한다.

산불 예방·진화 전담 공공기관 필요

산불이 연중화 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여름철 폭염성 가뭄과 겨울철 이상고온 건조현상으로 1월, 6월, 8월의 산불 발생 수가 증가하고 있다.

산불조심기간 외에 발생한 산불의 비율은 1990년대 11.6%에서 2010년대에는 21.2%까지 증가했다.

산불의 예방과 진화를 전담하는 공공기관 형태의 조직 마련이 시급하다. ‘산불은 1~2개월 정도 대응하면 된다’라는 안이한 인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산불은 안전기간이 사라진채 우리의 일상 되고있다. 기후위기로 대형산불은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녹색연합은 “국가적 재난으로 기록된 울진삼척 산불은 많은 과제를 남겼다. 산불의 예방과 진화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불 방지 정책이 ‘진화 이전에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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