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해외 출장 간 사이에 김정주 본부장 주관으로 국회서 행사 개최
내빈 소개만 40분… 국회의원에게 “산소 같은 남자” 낯 뜨거운 수식어

[국회=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이 대한민국 환경기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겠다며 준비한 성과발표회가 환경기술개발 성과 공유는커녕 보여주기식 자화자찬으로 끝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용주 원장이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열린 성과발표회는 조직 내부에서조차 뒷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회 헌정기념관을 대관해 국회의원들과 환경부 차관을 초대하고 전임 환경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하는 등 화려하게 꾸몄지만 정작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환경산업기술원 직원은 “많은 준비를 했다고 거창하게 떠들더니 정작 볼만한 게 없었다”라며 “지금까지 기술원이 해왔던 방식과 많이 다른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기술성과를 발표한다면서 내빈소개와 인사말을 듣는 데만 40여분이 걸린 것도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았다. 환경업체 관계자는 “업체가 보고 싶은 것은 환경 신기술이지 정치인들의 친목도모가 아니다”라고 비꼬았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김정주 환경기술본부장이 직접 내빈을 소개했다. 새누리당 당직자로 오랜 생활을 했던 김 본부장은 국회의원을 소개하면서 “산소 같은 남자” 등 낯 뜨거운 수식어를 동원하며 평소의 친분관계를 과시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김 본부장의 인맥 자랑을 보는 것 같아 거북했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행사장 식전 및 전시장에서 반복 재생된 동영상은 환경산업기술원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김정주 본부장 개인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동영상이었다. <정두언 의원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 본부장(왼쪽). 사진=김경태 기자>

자원 낭비 앞장 서는 공공기관

내용 면에서도 참석자들의 불만은 이어졌다. 현장의 한 기업인은 “발표를 끝까지 들었지만 이 행사가 학술세미나인지 아니면 정책간담회나 기술발표회인지 헷갈렸다”라며 “기술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닌 기술원 자랑을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국회에서 환경예산에 별 관심이 없어서 이해를 구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인데, 국회 측의 요청으로 행사가 커졌다”라고 해명했다.

환경산업기술원의 해명에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김 본부장이 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국회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당연히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자리했어야 하지만 초대명단에서 야당 소속의 환노위원장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환경청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 198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행사 제목에 ‘광복 70년’을 붙인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환경산업기술원 내부에서조차 “거창하게 판을 벌이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없으니 뜬금없이 ‘광복 70년’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예산낭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날 행사장에는 입구에서부터 행사도우미들이 두 줄로 서서 인사를 했고 국회의원, 환경부 차관 등 주요 내빈이 인사말을 할 때는 의전까지 담당해 마치 환경의 날 훈·포상이나 연말 시상식을 방불케 했다.

흑백이 아닌 올 컬러로 제작된 자료집은 이날 행사의 문제점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화려한 외관에 비해 내용은 부실했다. 

국회의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며 배경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정작 주요 내빈들은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비웠고 ‘선수들’끼리 뻔히 아는 설명을 들어야 했다.

환경부 차관, 국회의원, 전직 장관 등이 발언할 때마다 행사도우미들이 의전을 거들었다.

하필이면 왜 원장 없을 때 했나

아울러 환경산업기술원이 중점 지원한다는 환경기술에 대한 설명도 부실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총 835억원이 투입되는 ‘기후변화 대응 환경기술개발사업’에 대한 설명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과 향후 감축관련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술개발 ▷부처별 산발적으로 추진되는 적응정책과 기술의 최적화 기술개발 등 고작 두 줄이었다.

산업계가 비용을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현재 상황에서 효율적인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른바 보여주기식 사업만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하필이면 원장이 없을 때 대규모 행사를 벌인 것도 입방아에 올랐다. 원장이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이날 성과보고회는 김정주 본부장 주도로 진행됐고 환경산업기술원의 발자취를 보여준다던 동영상에서 원장 얼굴은 몇 번 보이지 않고 김 본부장의 행적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알맹이 없는 행사가 계속되면서 결국 마지막 토론 시간에는 참석자의 반 이상이 자리를 비웠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환경산업기술원 직원이거나 자금지원을 받는 업체 관계자들이었다.

행사 당일 하루 사용하고 버려질 자료집을 비싸게 컬러로 제작한 것을 두고 자원낭비라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명색이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이라면 피해야 할 일 아니었을까?

누가 진짜 주인공이었나?

결국 토론에서도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의 개도국 중심의 수출 전략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 이어졌다. 

(주)에코니티 장문석 대표는 “조금 부족한 우리 기술을 가지고 선진국보다 개도국에 진출해야 한다는(환경산업기술원의) 예상은 잘못된 것”이라며 “동남아든 미국이든 결국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들과 경쟁하게 된다. 세계적인 경쟁력이 아니면 해외 진출은 어렵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황지호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포지셔닝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어떤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인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어떤 결과물로 미래 가치를 생산할 것인가, 국가 포트폴리오를 좀 더 세밀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KAIST 박희경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환경기술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러니 후진국에 가서 장사할 생각만 하지 마라”며 “초기 투자비가 없어서 못 나가는 것이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출신으로, 환경산업기술원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던 김 본부장이 주도한 성과보고회는 결국 무수한 뒷말을 남긴 채 끝났다. 일각에서는 ‘김 본부장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얻기 위해 환경산업기술원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일고 있다.

공공기관으로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고객이 누구이며 서비스 대상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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