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F, 수십 년간 보전 노력 물거품 위기 처해
마약, 인신매매, 위조품과 함께 4대 불법 거래

[환경일보] 이정은 기자 = 세계 호랑이의 날을 맞아 WWF(세계자연기금)는 호랑이가 서식하는 지역의 정부들이 반밀렵 노력을 강화하고 아시아의 야생동물, 특히 전 세계에 고작 3900여마리만 남은 야생 호랑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덫을 엄중히 단속하도록 촉구했다.

밀렵꾼들은 점점 더 많은 덫을 이용해 호랑이, 코끼리, 표범 등 암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야생동물을 잡고 있다. 특히 자전거 케이블처럼 널리 쓰이는 재료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죽음의 덫은 아시아 숲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야생동물 불법거래는 연간 20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마약, 인신매매, 위조품을 이어 전 세계에서 4번째로 규모가 큰 불법거래로 성장했다.

WWF 트랩카메라에 포착된 야생 호랑이 <사진제공=WWF>

WWF 호랑이 보전 프로그램 타이거 얼라이브(Tigers Alive)의 리더 마이크 발처(Mike Baltzer)는 “덫은 야생동물을 멸종 위기로 이끄는 주요 원인이며, 동남아시아에서 위험하고 은밀하게 확산되고 있다. 야생 호랑이를 보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대규모 덫으로 인해 위태로워 지고 있다”며 “보전 활동의 최전선에서 덫을 치우고 덫을 설치한 자들을 검거하는 레인저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야생 호랑이가 덫에서 탈출하는 이례적인 경우에도 부상으로 쇠약해져 사냥하지 못하고 굶어 죽거나 질병에 걸린다. 또한 덫에 걸린 동물이 죽거나 불구가 돼 호랑이에게 이 중으로 타격을 준다. 호랑이가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 필요한 먹이까지 잡아 버리기 때문이다.

레인저 26명이 서울시 2.5배 면적 순찰

WWF 야생동물 관련 법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로힛 싱(Rohit Singh)은 “주요 서식지에서 야생을 위협하는 덫이 하루에 몇 개나 설치되는지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레인저들이 아시아의 보호 구역에서 연간 수십만 개의 덫을 치우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UNESCO 세계유산이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 호랑이, 오랑우탄, 코끼리, 코뿔소가 공존하는 수마트라의 열대우림에서 2006년에서 2014년까지 8년 사이 덫의 개수가 2배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다수 서식지에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수마트라의 보호 구역 중 하나인 근처 림방 발링(Rimbang Baling)에는 불과 26명의 레인저가 서울시의 2.5배 가까운 1400㎢를 순찰하고 있다.

로힛 싱은 “덫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덫을 설치하는 불법 밀렵꾼들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현장의 레인저들에게 더 많은 자원과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 더불어 지역사회는 보전 측면에서 이해당사자로 인정을 받고 권한도 부여받아야 한다”며 “풍부한 생물다양성은 야생과 인간 모두를 위한 것이며 지역사회는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WWF 야생 호랑이 보전 레인저 <사진제공=WWF>

세계유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마트라 구눙 르우제르(Gunung Leuser) 국립공원의 생태학적 가치는 연간 6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공원은 16억톤의 탄소를 저장하고 400만명에게 물을 제공하는 등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주민들의 삶 역시 국립공원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덫이 아시아를 옭아매는 가운데, 아시아의 보전 단체들은 긴급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캄보디아에서 와일드라이프 얼라이언스(Wildlife Alliance)가 이끌고 있는 보전 단체들은 야생 고기를 소비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인식 개선 운동에 착수하고 있다. 소비가 늘수록 공급 확대를 위해 덫도 늘기 때문이다.

2010년, 호랑이가 서식하는 지역의 정부들은 단 하나의 생물종을 보전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야심에 찬 도전을 약속했다. TX2, 즉 2022년까지 전 세계 호랑이 개체 수를 두 배로 늘리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감소 추세에 있던 전 세계 야생 호랑이 숫자는 2016년부터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해 호랑이 보전에 희망의 불빛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반밀렵과 레인저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려는 시급한 노력 없이는 개체 수가 다시 감소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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