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책임 강화 외면, 민간업체 변덕 따라 수거거부 가능
버리는 지역 따로, 처리하는 지역 따로 ‘환경 불평등’ 심화

[세종=환경일보] 중국발 금수조치로 촉발된 재활용품 수거 거부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정부가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줄이고 재활용률을 기존 34%에서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재활용이 쉽도록 페트병 등 포장재 재질개선과 함께 과대포장 및 1회용품 사용 억제 등에 초점을 맞춘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강화라는 근본적인 취지는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수익을 얻는 것이 목적인 민간업체에 폐기물 처리라는 공공의 영역을 맡기는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를 바꿀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지자체 책임성 강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소비가 많은 대도시에서 발생시킨 폐기물을 지방에서 처리하는 현재의 불공평한 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폐비닐을 원료로 생산하는 SRF(고형연료)의 경우 이를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는 모두 지방에 몰려 있다.

폐비닐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서울에는 고형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가 한 곳도 없는 대신, 에너지 소비가 적은 지방에서 고형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면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10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재활용품 대책에 대해 직접 브리핑에 나섰다. <사진=김경태 기자>

2030년 플라스틱 폐기물 절반 감축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2020년까지 무색 페트병 전환, 재활용 의무대상 확대다. 정부는 2020년까지 모든 생수·음료수 페트병을 무색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페트병 출고량의 55%를 차지하는 19개 주요 업체와 지난 4월27일 자발적인 협약을 맺었으며, 10월까지 페트병을 평가해 유색병은 무색으로 바꾸고 라벨은 잘 떨어지지 않도록 개선을 권고해 이행하지 않은 업체는 언론에 공개할 계획이다.

그러나 2020년까지 유색 페트병 제로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달린다. 55%를 차지하는 대형 업체들이 모두 무색으로 교체하더라도 나머지 45%를 생산하는 업체들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법으로 이를 강제한다고 가정해도, 포장재 재질 개선에 필요한 비용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재활용 의무대상 품목도 확대되면서 재활용 의무가 없던 비닐·플라스틱 제품을 의무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편입해 현재 43종에서 2022년까지 63종으로 늘게 된다. 이렇게 부과되는 재활용 분담금 역시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정부는 재활용 수익성이 낮은 비닐류는 우선 재활용 의무율을 현행 66.6%에서 2022년까지 90%로 높이고, 출고량 전체에 대해 재활용 비용을 부과해 재활용 업계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폐비닐을 원료로 한 SRF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90%까지 재활용 비율을 높일 현실적인 방안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까지 유색 페트병을 무색으로 전환하고(왼쪽) EPR 대상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자료제공=환경부>

2022년까지 1회용품 35% 감축

과대포장 및 1회용품 사용도 줄인다. 대형마트의 이중 포장을 없애고, 제품의 출시 이전부터 과대포장 검사를 의무화하도록 법령 개정도 추진한다.

아울러 온라인 쇼핑 증가를 고려해 택배 등 운송포장재의 과대포장 방지 가이드라인을 올해 10월까지 마련하고, 현장 적용성을 평가해 내년에는 법적 제한기준을 설정할 방침이다.

또한 1회용컵의 경우 우선 사용 감소를 위해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 등과 자발적 협약을 강화해 텀블러 사용 시 10% 수준의 가격할인, 매장 내 머그컵 사용 시 리필 혜택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테이크아웃 컵의 원활한 회수와 재활용을 위해 컵보증금 도입, 판매자 재활용 비용부담 등 관련 법령을 연내 개정하고, 전용수거함 등 공공 회수체계 정비, 컵 재질 단일화도 추진한다.

대형마트·대형슈퍼에서는 1회용 비닐봉투 대신 종이박스, 재사용 종량제봉투 등만 사용토록 하고, 매장 내 속비닐 사용량도 50% 감축할 계획이다.

1회용 컵(커피전문점) 사용량(왼쪽)을 줄이고 1회용 컵(커피전문점) 재활용률을 높인다. <자료제공=환경부>

비상상황에만 지자체 개입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지자체 공공관리는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꼽힌다. 민간수거업체와 아파트 간의 계약내용을 지자체에 보고하고, 만약 수거가 중단되면 3개월 전에 미리 고지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성 강화 대책의 전부다.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활용품 수거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날 브리핑에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공공영역에서 모두 처리하는 것이 답이지만, 수거업체가 있는 상황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 공공의 역할 강화는 필요하지만 그 시장을 없앨 것인가는 부정적이다”라고 밝혔다.

현재처럼 돈 되는 재활용품은 수거업자들이 가져가는 대신, 수익성이 떨어져 수거를 거부하는 비상상황에서 지자체가 일시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를 되풀이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아울러 재활용 제품의 낮은 품질에 대해서는 “SRF 정책을 강화하면서 재활용 분야 R&D가 열회수에 치우친 결과 마땅한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기술개발에 나설 뜻임을 밝혔다.

또한 녹색제품 의무구매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녹색제품 구매 권고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기관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대책을 내놨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재활용시장 체질을 바꾸는 시도는 없었다. 대신 재활용이 쉽도록 재질구조 개선, 일회용품 발생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폐기물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대도시와 이를 처리하는 지역 간 환경 불평등, 언제든 수거를 거부할 수 있는 민간업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 재활용 품목별로 제각각인 처리방법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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