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개 측정대행업체가 전국 5만개 배출사업장 ‘셀프측정’
적발 시 배출업체는 고작 500만원 벌금, 측정업체는 영업정지

[환경일보] 지난 4월 여수산단에서 엘지화학, 한화케미칼 등 대기업을 포함한 업체들이 미세먼지 측정치를 조작한 사실이 적발됐다. 측정치 조작은 전남 지역 뿐 아니라 충북, 울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됐다.

정부가 미세먼지를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1조원이 넘는 추경을 마련해 줄이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기업들까지 가담해 오랜 기간 미세먼지 배출량을 조작하며 오염물질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규제가 대폭 강화된 발전소의 미세먼지 배출은 5년 만에 43% 감소한 반면,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제철·제강업은 오히려 25% 증가했다.

산업계, 미세먼지 무임승차

미세먼지가 국가적인 재난 수준으로 다뤄지고 있다지만 미세먼지 최대 배출원인 사업장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느슨하다.

사업장 굴뚝자동측정기(TMS) 측정자료를 분석한 결과 발전소 배출은 2013년 대비 2018년 43% 감소했지만 석유화학과 시멘트제조업은 별 차이가 없었고, 특히 제철·제강업은 오히려 25% 증가했다.

이처럼 업종별로 배출량 변화에 차이가 큰 것은 규제 강도 때문이다. 발전분야의 경우 규제 강도가 2배 이상 강화되면서 대폭 강화된 기준에 맞춰 환경개선 설비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그 결과 상위 10개 사업장들은 지난 4년 동안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25~75% 가량 줄었다.

반면 배출량이 증가한 제철·철강업의 규제 기준은 2010년 120~220㏙에서 2015년 120~200㏙으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체 미세먼지 배출조작’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허술한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미세먼지 저감에 무임승차 하면서도 과태료 부과에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로 문제를 키웠다”면서 “사업장 관리체계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함께 소규모 영세 사업장 등 단속의 사각지대에 대한 촘촘한 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강병원 의원과 환경재단 미세먼지 센터 주최로 산업계 미세먼지 배출조작에 대한 토론회가 24일 국회에서 열렸다. <사진=김경태 기자>

셀프측정, 갑을관계부터 바꿔야

측정치 조작을 가능케 한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셀프측정’이다. 배출업체가 직접 측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돈’을 주고 측정대행업체에 의뢰하고, 이렇게 측정된 값이 배출량으로 신고된다.

그렇다면 돈을 받고 측정을 대행해주는 업체 입장에서 누구의 눈치를 보게 될까? 자연스럽게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고, 갑인 배출업체의 입맛에 맞게 을인 측정대행업체가 조작이나 편법을 저지를 위험이 대단히 높은 구조다.

환경정의는 “기업들이 측정값을 조작해 대기배출부과금을 면제 받아 이익을 챙기고 피해는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비윤리적 경영”이라며 “단순히 측정대행업체에게 책임을 미루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각지대를 찾아 개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저가입찰로 인한 낮은 서비스품질도 문제다.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경쟁을 제한하는 측정수수료 고시제도를 폐지한 후 측정대행 시장은 가격경쟁체제로 돌아섰다. 낮은 가격을 부른 측정대행업체가 선정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저가입찰제를 통해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측정대행업체는 비용을 줄여 이익을 보전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이는 서비스 부실로 이어졌다.

게다가 하는 일에 비해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자격요건은 높기 때문에 기술인력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적절한 장비 운용이나 정확한 측정이 힘들어졌다.

준공영제로 객관성 확보해야

한서대학교 김종호 교수는 셀프측정에 대한 대안으로 기술인력 능력진단 및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법으로 시료채취 가능량을 제시하는 것은 근무환경과 업무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하다”면서 “대신 측정인력 1조당 1일 업무량 파악 및 한도를 설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배출업체와 측정대행업체 사이의 갑을 관계로 인한 배출 조작을 막기 위해 준공영제 운영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준공영제를 통해 등록 및 폐·휴업의 신고 업무를 대행하고, 측정대행 실적보고 및 관리를 담당하도록 하자”며 “아울러 수수료 산정방식을 규정해서 저가입찰을 막고 시료채취 분석결과를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전산입력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배출량을 조작한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뿐만이 아니라 배출 조작이 가능하게 만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김경태 기자>

측정업체가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도 있다. 광운대학교 유경선 교수는 “전국의 대기배출사업장은 5만여개에 달하는데, 전국적인 측정대행업체의 수는 고작 395개에 불과하다”며 “이 정도 숫자로는 전수조사가 불가능하다. 이번 배출치 조작은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유 교수는 “배출 조작에 대해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은 맞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감정적인 대응을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근무여건을 보장하는 등의 구조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까지 미세먼지 배출량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배출 통계치를 믿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 교수는 “미세먼지에 대한 중국의 기여도가 높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배출량을 속이고 있어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며 “사회적 신뢰 회복을 통한 환경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마저 불공평

환경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인 솜방망이 처벌이 미세먼지 배출 조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에너지국장은 “갑을 관계이기 때문에 주도권은 배출업체에 있지만, 처벌에 있어서는 갑인 배출업체가 500만원 이하 벌금, 을인 측정대행업체는 1년 이하의 영업정지에 처해져 공평하지 못하다”며 “기업이 적발될 것을 각오하고 배출조작을 감행하는 것은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가기후환경회의 김법정 사무처장은 “불법을 통해 얻는 수익보다 적발 시 받게 되는 불이익이 크다면 감히 불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며 “부과금 현실화와 함께 고의적이거나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을 경우 징벌적 부과금이 필요하다”며 제재 강화를 시사했다.

또한 김 사무처장은 “중국이 1만8000명을 동원해 불법배출을 감시한 것처럼 우리도 이번 겨울에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감시할 계획”이라며 “전국의 핫스팟 지역에 집중감시 지역을 할당해 산업단지 미세먼지 농도를 공개하고, 그럼에도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지지 않으면 단속반이 상주해서 집중 감시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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