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극단 적>



[환경일보] 이연주 기자 = 상투적인 예술을 경계하며 ‘주목할 만한 젊은 연출가’로 선정됐던 이곤 연출이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극 ‘퍼디미어스’(원제: Fuddy Meers)를 개최한다. 이 작품은 가정폭력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기억과 신체의 변형을 통해 드러내고 있지만, 코미디라는 형식 속에서 가족과 사랑, 그리고 기억을 회복하는 휴머니티를 추구하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데이빗 린제이 어베어(David Lindsay-Abaire)의 초기작으로,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 안에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이 담겨 있다. 이번 한국 초연은 국내외 창작극 교류에 힘쓰고 있는 극단 적의 제작을 통해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9월28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퍼디미어스’는 매일을 새롭게 기억해야 하는 주인공 클레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 헤매는 기억 대소동극이다. 그녀에게 가족이라고 나타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었거나 말을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시 관계를 쌓으려 애를 쓴다. 이 작품은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간의 갈등을 섣부른 화해로 몰고가지 않음으로써 멜로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성취하고 있다.

기억상실의 주인공 클레어를 연기하는 배우 주혜원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벗어던질 수 있지만, 기억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불안감이 클레어의 행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며, 관객들이 기억을 잃어버린 클레어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경험할 것을 강조했다.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과거를 책임진다는 것은 현재를 지탱하는 나를 만드는 것이고, 현재를 알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드러나는 나를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억은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

작가 데이빗 린제이 어베어가 크리스토퍼 듀랑과 마샤 노먼에게서 극작을 공부하면서 썼던 이 작품은 그가 영향을 받은 선배 작가들과 대중문화의 요소들이 성공적으로 만나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틀랜틱 시어터의 크리스티안 파커는 미국의 코미디 연극의 계보에서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를 소개한 바가 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곤 연출은 “기억은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복잡해 보이는 이야기가 탄탄한 구성 안에서 잘 맞물려있으면서도 그 희극성과 부조리한 기괴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며, “웰메이드 드라마의 구성 안에서 다양한 결함을 지닌 인물들의 정서와 과거가 충돌하면서 이야기의 진행에 탄력을 더해주고, 결말에서 제시하는 화해를 넘어서는 열린 결말까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덧붙였다.

제목 ‘퍼디미어스’는 유원지에 있는 올록볼록한 거울의 집(Funny Mirrors)을 뜻하는데, 뇌일혈로 실어증에 걸린 엄마 거티의 발음을 차용한 의미없는 말이기도 하다.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존재하는 사물을 지칭하는 ‘퍼디미어스’는 의미가 전달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무대에 부유하는 기억을 나타내는 물질적 은유를 뜻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클레어와 가족들의 우당탕탕 기억 소동극, ‘퍼디미어스’가 9월12일부터 2주간 대학로 나온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작가 데이빗 린제이 어베어의 첫 성공작인 ‘퍼디미어스’는 코미디이다. 하지만 그의 코미디는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가벼운 코미디 쇼에서 접하는 가벼운 코미디가 아니라 그만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엘리트나 대중적인 문화의 차이나 구별없이 코미디라는 스타일이 갖는 여러 요소들이 그의 독특한 희곡 양식 안에 녹아들어 있다.

코미디는 다분히 형식적인 클리쉐를 담고 있고 이 작품 역시 그렇게 보이는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클리쉐를 어떻게 다시 새롭게 만드냐에 달려있다. 클리쉐란 이미 이전에 성공을 거두었고 관객에게 검증되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온 요소들이다.

이 안에는 이전에 관객들의 마음을 끌었던 매력이 담겨있기 때문에 원초적인 매력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클리쉐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연출 과제이다. 인물이 가진 진실성과 비극, 그리고 작품이 가지는 코미디라는 형식성의 조화는 이 과제의 해결을 통해 완성된다.

심인성 기억상실증인 클레어는 매일매일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깨어나 처음 보는 남편, 리처드와 아들, 케니를 만나면서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클레어는 오늘 하루 잊어버린 과거를 찾아 오빠(?)를 따라 집을 나선다. 클레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 리처드와 엄마를 기억하는 클레어의 아들 케니는 클레어를 찾아 나선다.

그들은 뇌일혈로 인한 실어증 때문에 자신이 말하고 싶은 단어로 말할 수 없는 클레어의 엄마 거티의 집으로 간다. 거티는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려 하고, 그곳에서 만난 밀레는 말을 멈출 수 없어 자꾸 하면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클레어는 기억을 조금씩 되살릴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그 때 누군가 말해 준다.
“괜찮아, 어떤 일은 잊혀진 채로 두는 게 더 좋아”

yeon@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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