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환경일보] 김태홍 기자 = 제주시청의 밤은 어떨까? 시민들이 조용히 집에서 쉬는 동안 공직자들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불침번을 선다. 관공서에는 ‘당직’이란 것이 있다. 주말과 공휴일, 평일 밤에 근무하는 것이 숙직이고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 낮에 근무하는 것이 일직이다. 낮에 서는 일직근무는 여자직원들이, 밤에는 남자직원들이 선다.

 

기자는 25일 저녁 제주시청 당직(숙직)자들과 함께 밤샘근무를 함께 하며 공무원들의 밤을 들여다봤다. 제주시청 공무원들은 “당직 근무하는 날이면 늘 괴전화(?)공포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한다. 괴전화란 별의별 민원전화가 많다는 것이다.

 

당직자들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민원전화는 물론 1시간마다 숙직순찰시계를 들고 청사 내 순찰을 돈다.

이날 당직사령은 양창용 행정시기능강화T/F팀장 등 4명. 오후 7시가 되자 청사 건물 출입문을 모두 닫히며 당직근무가 시작됐다.

 

당직자들은 교대로 인근식당에서 교대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당직실에 들어섰고 때마침 당직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당직근무가 시작됐다는 신호다.

 


 

 

 

이날 첫 민원전화는 아파트 장애인주차장에 일반 차량이 주차를 했으니 해결해 달라는 요구였다. 아파트관리실에 요청해야 할 일을 가지고 시청에 민원을 넣은 것이다. 게다가 그는 주차된 차량의 주인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차량을 이동해달라고 대신 전화를 해달란다.

 

그렇다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는 노릇. 당직자가 차주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차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민원인마저 통화가 안 되는 난감한 상황 속에 시간만 흘러간다.

 

이어 가로등이 꺼졌다는 민원전화가 걸려왔다. 가로등 민원은 야간에 할 수 없어 당직일지에 기록하면 다음날 총무과에서는 당직일지에 기록된 사항들을 확인해 관련부서에 연락을 취한다.

 

설상가상으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화장실에서 화재까지 발생했다. 전화를 받고 출동한 양창용 팀장과 직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소방차가 오기 전 적절한 초동조치로 화재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 경찰은 한 남성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조사를 위해 남문지구대로 연행했다.

 

 

 

 

이번에는 자정이 넘었는데 PC방에서 흡연을 한다는 민원전화다. 이에 당직자는 PC방 상호를 알려주면 내일 보건소에서 조치를 취하도록 했지만 민원인은 당장 와서 단속하라며 독촉한다. 다행히 당직자의 설득이 먹혀 상황이 종료됐다.

 

이어 새벽 1시에는 삼양해수욕장 인근에서 하수도관이 파열됐다는 신고가 들어갔다. 당직자는 부랴부랴 수자원본부 제주지역사업소 당직자에 연락을 취했고 기자 역시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수자원본부 제주지역사업소 김성현 주무관이 출동해 신속히 조치를 취했다. 김 주무관은 “상수도관이 파열된 것이 아니라 건물신축 시 수도계량기를 연결시킬 수 있도록 예전 택지개발 당시 미리 임시로 막아놓은 밸브가 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금에는 전화기도 불나요”

 

다시 시청 당직실로 향하자 이번에는 술에 취한 민원인들의 민원으로 전화기가 쉴 틈이 없었다. 양 팀장은 “자정이 지나면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전화를 걸어 개인 넋두리까지 늘어놓는다”며 “공무원의 질문과 안내에는 일절 답변하지 않은 채 혼자서 넋두리를 하지만 당직자는 전화를 끊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양 팀장은 “오늘은 그나마 나은 편이이다. 술값이 비싸다는 등, 술을 팔아주지 않는다는 등의 별별 민원전화가 걸려온다”며 “특히 불금(불타는 금요일)에는 전화기에 불이 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기자는 이날 당직자들과 숙직을 함께 하면서 모범시민(?)들의 민원전화로 3대의 전화가 밤새 춤을 추게 만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직실의 벽시계는 고장 난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고 날이 밝았을 때는 지옥에서 겨우 헤어난 기분이었다.

 

‘공무원은 헌법 제7조에 따라 국민에 대한 봉사자요, 국민에게 무한책임을 져야한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시민들이 사는 공간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이날 제주시청 당직자들은 공무원 헌법 내용을 충실히 수행했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며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자다. 따라서 국민을 섬기고 책임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은 국민의 노예는 아니다. 술값이 비싸다는 술주정을 받아주는 마음 착한 아내도 아니다. 그들 역시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한 사람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요, 자녀다. 지난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제주시청 당직실로 걸려온 민원전화는 3876건으로 1일 평균 65건 꼴이었다.

kohj007@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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