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가 싱가포르에 남긴 지대한 영향들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나뉘고 있다. 가장 탁월한 성과로 꼽히는 것은 과감한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이다. 리콴유 집권이후 20여년 동안 싱가포르는 연평균 9%의 고속성장을 이뤄갔으며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선두에 섰다.
또한, 총리 직속기구로 공무원 비리 조사조직을 신설하고 공직 사회의 부패근절에 나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직사회 청렴국가로 만들었다.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자기 소유의 집에 거주하며,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주택보급률도 100% 달성했다. 반면 부정, 부패, 부조리를 뿌리 뽑는 과정에서 태형 등 가혹한 형벌과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매체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감독을 가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했다. 또한, 고학력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등 엘리트 우대와 권위주의가 문제시되기도 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경제신화를 이룩하고서도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로 인해 독재자라는 비판도 많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집과 의료품, 직업, 학교라고 주장하며 철저하게 실용주의 노선을 고집했다.
리콴유 전 총리가 추진한 고속경제발전 정책으로 인해 싱가포르 사회는 물질주의를 강조하며, 성공의 기준은 재물과 허가받기 힘든 승용차 소유, 개인용 고급아파트, 차별화된 신용카드, 교외 레저시설 등으로 판단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싱가포르의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만족도가 낮은 나라라고 국민들이 자평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문화 융화정책으로 인해 전체 인구 546만 명 가운데 해외로부터의 이민자들이 36%를 넘어 150여만 명에 달한다. 앞으로도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30년까지 700만 명으로 늘린다는 방침이어서 해외 이민자 수는 더욱 늘어나 갈등의 불씨가 상존한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부국이지만, 빈부격차와 소득불균형이 심화돼 인구의 약 10%는 4인 가족 단위 월 평균소득이 1000달러 이하에 불과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활동하고 살아있는 동안은 기적적인 발전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불만을 식혀왔는데 앞으로 사회적 측면에서 국민의 이해와 동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유층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계와 재계 고위직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 체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가 떠난 싱가포르. 어떤 변신을 시도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