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던 리콴유 전 총리가 3월23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59년 초대 총리로 취임 후 손수 빗자루를 들고 거리의 쓰레기를 치웠고, 갈라진 나라의 힘을 하나로 모으며 파격적인 외국기업유치에 나섰다. 그의 31년간 재직 기간 중 싱가포르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2750달러로 증가했고, 작년 GDP는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에 달하며 기염을 토했다.

리콴유가 싱가포르에 남긴 지대한 영향들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나뉘고 있다. 가장 탁월한 성과로 꼽히는 것은 과감한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이다. 리콴유 집권이후 20여년 동안 싱가포르는 연평균 9%의 고속성장을 이뤄갔으며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선두에 섰다.

또한, 총리 직속기구로 공무원 비리 조사조직을 신설하고 공직 사회의 부패근절에 나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직사회 청렴국가로 만들었다.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자기 소유의 집에 거주하며,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주택보급률도 100% 달성했다. 반면 부정, 부패, 부조리를 뿌리 뽑는 과정에서 태형 등 가혹한 형벌과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매체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감독을 가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했다. 또한, 고학력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등 엘리트 우대와 권위주의가 문제시되기도 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경제신화를 이룩하고서도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로 인해 독재자라는 비판도 많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집과 의료품, 직업, 학교라고 주장하며 철저하게 실용주의 노선을 고집했다.

리콴유 전 총리가 추진한 고속경제발전 정책으로 인해 싱가포르 사회는 물질주의를 강조하며, 성공의 기준은 재물과 허가받기 힘든 승용차 소유, 개인용 고급아파트, 차별화된 신용카드, 교외 레저시설 등으로 판단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싱가포르의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만족도가 낮은 나라라고 국민들이 자평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문화 융화정책으로 인해 전체 인구 546만 명 가운데 해외로부터의 이민자들이 36%를 넘어 150여만 명에 달한다. 앞으로도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30년까지 700만 명으로 늘린다는 방침이어서 해외 이민자 수는 더욱 늘어나 갈등의 불씨가 상존한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부국이지만, 빈부격차와 소득불균형이 심화돼 인구의 약 10%는 4인 가족 단위 월 평균소득이 1000달러 이하에 불과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활동하고 살아있는 동안은 기적적인 발전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불만을 식혀왔는데 앞으로 사회적 측면에서 국민의 이해와 동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유층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계와 재계 고위직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 체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가 떠난 싱가포르. 어떤 변신을 시도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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