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제 살포…휘발성분 증발 기름 바다 속 떠다녀

백사장·자갈 사이에 침투한 기름은
바다내음 아닌 기름 냄새 진동


7일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의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 만리포 주민들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20~50㎝ 두께의 시꺼먼 기름 덩어리가 파도에 실려 만리포 해변으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해변은 온통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사태는 뭍보다 바다가 심각했다. 바다는 기름막과 기름 덩어리로 쌓여 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고 발생 후 2~3일이 지나자 사태는 점점 악화됐다. 초기에 해변 속 깊이 삽시간에 흡수된 것하며, 기름 내 휘발성분이 증발되면서 덩어리진 기름이 해변과 바다가 둥둥 떠다니는 꼴이 됐다. 초기 방제의 실패였다.

빠른 밀물과 썰물의 교차와 종잡을 수 없는 유속의 흐름으로 기름은 만리포에서 학암포로 순식간에 퍼졌다. 12일 현재 학암포에서 파도리 연안에 이르는 1마일권에 폭 1km 엷은 유막이 분포해 있으며, 천리포~가의도 인근 연안에도 엷은 유막이 산재해 있다. 조류의 영향으로 가로림만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북서풍의 영향으로 안면도 쪽으로 기름띠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고 6일째 만리포는 기름 반, 흙 반의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줄무늬처럼 백사장은 그렇게 펼쳐졌다. 연안 쪽 바다는 본래 서해의 물빛으로 돌아왔다. 기름이 파도에 밀려들지도 않았다. 벌써 기름이 다 제거된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니 여전히 기름막과 덩어리가 떠다녔다. 연안 쪽 바다에만 기름이 제거된 것이다.

모래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원봉사자들의 바지런한 손길에도 방습포를 붙일 때만 기름이 사라지는 듯하다, 다시 방습포를 떼면 기름이 스며 나왔다. 기름이 땅속 깊이 베여있는 것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기름만 제거됐다는 소리다.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됐을까.

바다의 방제작업은 유화제를 통한 항공방제가 대단위로 이뤄졌다. 바다에 유화제를 살포해 기름을 분리시켜 멀리 흩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큰 면적으로 흩어지고 휘발성분이 증발한 기름은 무게 때문에 바닷 속으로 가라앉게 돼 사람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미봉책으로 눈에만 보이지 않는 기름이 바닷 속을 떠다니게 된 것이다. 눈으로 안 보면 불안감도 덜할 것이라는 당국의 술책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량 살포된 유화제는 그 양에 따라 인체와 생태계에 유해성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유화제의 적정량을 얘기하지 못한다. 일단 눈에만 보이지 않는다면 한 시름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복구 작업의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자원봉사자들이다. 12일까지 방제작업에 동원된 지역주민, 군인, 자원봉사자 등만 해도 1만6574여명. 이들 대부분은 백사장에서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에 동원된다. 사고 직후 만리포 해수욕장은 자원봉사자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인파로 기름띠를 다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

사고 발생 초기에는 손과 바가지를 이용해 기름을 퍼내다가 며칠이 지나자 방습포를 이용해 기름을 제거하고 있다. 그나마 바가지를 이용했을 때는 기름이 제거되는 모양이 확연히 눈에 띄었지만 방습포는 달랐다. 기름이 있는 곳에 방습포를 붙여서 손발로 꾹꾹 누르면 방습포가 서서히 기름을 흡수하나 방습포를 떼면 숨어있던 기름은 다시 스며 나왔다. 눈에 드러나지도 않고 매우 지리멸렬한 작업이 반복됐다. 기름은 어디까지 스며든 것일까 짐작조차 어려웠다.

어쩌면 모래사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일지도 모른다. 갯바위 어촌은 헌옷가지로 자갈을 일일이 닦아야만 했다. 돌들을 아무리 닦아도 기름은 이미 돌들 사이 어디까지 침투됐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이 돌들을 지나 바닷속까지 들어가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이렇게 유화제를 뿌리고 해수욕장의 기름을 퍼나르고 자갈을 닦아도 기름은 쉽사리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기름은 없어져도 해풍에 실려 동네 전체의 기름 냄새며, 백사장에 침투한 기름이 몇 미터인지 가늠할 수 없으니 아마 그 기름까지 모두 제거되려면 족히 수십년에서 백년까지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태안=김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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