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

경운궁은 원래 덕종(세조의 왕세자 추존)의 원자 월산대군의 사저로서 서부 황화방(현 정동)에 있었다. 덕종이 일찍 돌아가시고 그 아우 해안대군이 세조의 제2세자가 되니 이분이 곧 예종이다. 예종이 승하한 후 덕종의 원자인 월산대군에게 왕위를 전하지아니하고 덕종의 둘째 아들이요 예종의 양자인 성종이 왕위를 계승하니, 월산대군은 왕의 친형으로 사저에 거처하였다. 성종 10년 12월에 월산대군은 돌아가고 다만 그 부인인 박씨만 연산군 시기까지 생존하여 있었다.
그 후 104년을 지나 선조 15년 임진년에 왕이 왜란을 피하여 의주 용만까지 파천하였다가 26년 10월 4일 한양으로 환도하니 창덕, 경복, 경희 3궁과 종묘가 병란에 소실되고 부득이 월산대군 고택을 임시 행궁으로 삼고 이름을 시어소라 하였다.
처음에는 목책을 돌려 세웠고, 18년에 길가에다 동문을 세웠는데, 후에 이항복이 병조판서가 되어 비로서 궁장을 건조하여 대월 모양을 만들고 경운궁이라 명명하였다.
조선 후기의 이 궁에는 궁궐다운 건물도 없었고, 왕실에서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고종 말년에 이르러 조선이 열강들 사이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왕이 경운궁으로 옮기자, 이 궁은 비로소 궁궐다운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하였다.
고종이 경복궁에 있던 고종 32년 10월에 일본 군대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경복궁 내에서 난동과 민비 시해의 참변이 있은 후 얼마 안 있어 고종은 치밀한 사전 준비로 이듬해 2월에 왕태자와 함께 한 많은 경복궁을 떠나 경운궁 근처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관에 나가 머물게 되었다. 이 때 왕태자와 왕태자비는 경운궁에 머물게 하였다.
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고종은 건양 2년(1897) 2월에 러시아 공관에서 경운궁으로 옮겨 오게 되니 경운궁은 오랜만에 다시 왕이 임하는 궁궐로 되었던 것이다. 이 때를 전후하여 중화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들이 세워졌다. 그 해 10월에는 왕이 천지에 고하여 황제라 일컫고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치니, 경운궁은 최근세 역사상 기념할 만한 궁궐이기도 한 것이다

러시아 공사관
사적 제 253호로 지정되어 있고 정동에 위치하는이 건물은 조선 고종27년 (1890)에 건축된 르네상스풍의 건물로서 설계는 러시아인 사바틴이 했다. 6?25전쟁때 파괴되어 탑과 지하2층만이 남아 있었으나, 1973년에 현재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구조는 벽돌조 2층건물로서 한쪽에는 탑을 세웠다. 탑의 반원아치형 창위에 「페디먼트」 (창틀위의 박공모양 장식)로 꾸몄으며, 공사관 건물 벽체에는 원아치의 창을 냈고, 날개부 돌출부분에도 「페디먼트」창을 내었다. 특히 이곳은 고종 건양원년 (1896) 고종황제가 세자(순종)와 함께 덕수궁에서 옮겨나와 다음해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사진자료에 의하면 고종이 거처했던 방의 내부도 르네상스풍의 실내장식을 했었다. 현재 탑의 동북쪽으로 지하실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이것이 경운궁까지 연결되었다고도 한다.

서울 역사 박물관
2002년 5월 21일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의 역사?문화를 정리하여 보여주는 도시역사박물관이다.

'시민이 만들어 가는 박물관' 이라는 모토 아래 유물기증운동을 펼친 결과 '서울토박이회' 등 시민들의 기증 기탁이 이어져 시민들의 기증유물이 전체 소장유물의 절반에 가깝다. 전시기법 측면에서는 사실적 재현을 자제하고 상징적, 은유적 표현을 일부 도입, 관람객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되게 하였으며, 공간구성에 있어서도 방(실) 중심의 분절적, 폐쇄적인 체계와 달리 마당(존) 중심의 역동적이며 개방적인 체계로 구성하였다. 또한 관람객들이 멀티미디어를 통해 전시내용을 종합, 정리하고 보충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정보의 다리'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각종 놀이기구, 과학기구 등을 직접 조작해보는 '체험공간', 유물을 손으로 만지면 모니터를 통해 해당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터치뮤지엄' 코너 등을 마련하여 체험중심의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다. 나아가 서울 도심 중앙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은 무료존(뮤지엄샵, 카페 등 공용공간)을 설치하여 전시관람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관람객이 자유롭게 박물관에서 휴식할 수 있는 열린 박물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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