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불안이 세계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상이변 등에 따른 공급충격 현상이 완화될 경우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 추세는 향후 다소 누그러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국내 소비자물가 불안도 2분기 이후 어느 정도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낮아지기는 어려워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보다 높은 3%대 초중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편집자 주>

 

2011년 새해 들어 국내경제는 물가불안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부문은 농산물과 석유류다. 지난해 12월 중 농산물 가격은 전년동월비 26.5%, 석유류 가격은 8.3% 상승해 소비자물가 상승 기여도가 1.9%에 달했다.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인 두 부문이 물가상승의 절반 이상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특히 불안감을 크게 하는 요인은 새해 들어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공산품 가격의 연쇄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다. 설탕, 밀 등 국제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원가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식품생산 기업들이 가격인상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부터의 빠른 전세가격 상승과 구제역 파동 등이 겹치면서 소비자물가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게 확대되는 양상이다. 물가연동 국채와 일반 국채의 수익률 격차로 표시되는 예상 인플레이션은 금년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해 후반부터 성장활력이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불안까지 겹치면서 위기에서 막 벗어난 국내경제가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상이변이 공급 불안의 주요인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자료=통계청, lg경제연구원).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자료=통계청, LG경제연구원>
2010년은 자연재해, 기상이변, 사고 등이 유난히 빈번해지면서 농산물과 금속원자재 생산의 차질이 매우 컸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에서 강진이 발생하고 최대 주석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서 폭우가 이어지면서 구리와 주석 수출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11월부터 5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있는 호주(세계 원료탄 공급의 60%를 차지)는 석탄 생산에 차질을 보이고 있다. 농산물 부문의 경우 세계 3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130년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밀 수출을 중단하고 있다. 주요 곡물 생산지인 호주의 홍수, 남미의 가뭄 등 심각한 이상기후(라니냐 현상)에 의해 파종 지연 및 위축, 품질 저하 등 작황부진에 대한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기상조건과는 별개로 광산 사고와 파업, 항만 사고 등으로 인해 칠레에서 구리 생산 차질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상이변은 수요 측면에서도 원자재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0년 12월부터 100년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유럽은 17년만의 최악의 폭설을 경험하고, 미국 중부지역과 캐나다 역시 폭설과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면서 에너지 부문에서 추가적인 수요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

 

물가불안 당분간 지속될 전망

 

국제원자재 가격.

▲국제원자재 가격과 국내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

<자료=Global Insight, 한국은행, LG경제연구원>

국제원자재 가격과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를 보면, 2000년대 들어 두 지표간의 관계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기에 국내물가가 상승압력을 받지만,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소비자물가도 다시 안정됐다는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에 따라 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하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0년대에는 전반적인 내수부진이 지속되면서 가격을 인상시킬 경우 내수가 추가적으로 더 위축될 것을 우려해 인상을 자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80년대 후반 내수호황기에 국제원자재 가격이 떨어진 이후에도 국내 소비자물가의 높은 상승세가 지속됐던 것과 대비된다. 2000년대 자영업 부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개인서비스 물가가 안정되고 있는 점도 인플레이션 확산을 제약한 요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대외부문의 충격을 제외하면 국내적인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내경제의 성장활력이 지난해보다 낮아지면서 디플레이션 갭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의 환율 수준에서는 경상수지의 큰 폭 흑자가 지속되기 때문에 원화도 절상되면서 대외부문에서의 가격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추세가 진정될 경우 국내소비자 물가 불안 현상도 누그러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세가 진정되더라도 단기간에 크게 하락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국제원자재 가격 변화는 약 1~3개월의 기간에 걸쳐 국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1분기 중에는 3%대 중후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유지되고 2분기 이후 상승세가 점차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 평균으로는 지난해에 비해 높은 3%대 초중반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되고 있다. 물론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소비자물가 불안이 수시로 재개될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제철.

▲2010년은 자연재해, 기상이변, 사고 등이 유난히 빈번해지면서 농산물과 금속원자재 생산의 차질이

매우 컸다.


당장은 인플레 기대심리 차단에 주력해야

 

소비자물가 상승의 주원인이 대외부문의 충격에서 비롯됐고 이러한 충격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물가정책의 초점은 당분간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둬야 할 것이다. 국내경기가 둔화추세를 보이고 세계적인 경제불안 요인도 여전히 남아 있어 총수요 정책의 기조를 당장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공공요금 인상을 가급적 연기하고 관세인하 등 미시적 정책들을 통해 정부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의지를 보이는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국제원자재 가격이 진정되지 않고 불안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미시적인 정책을 지속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의 원인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개도국 수요의 지속적인 확대와 동반될 경우에는 물가상승 추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국내외 경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금리인상 등 총수요 억제정책의 시기를 앞당기는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유통체계의 비효율성 개선, 원자재 수입의존도 축소 등과 같은 중장기적인 가격안정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자료=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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