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100달러도 안됐던 나라가 몇 십 년 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하는 나라로 뒤바꼈다. 바로 개도국들의 롤모델이며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나라의 얘기다. 1991년 4월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되어 정부의 무상원조를 전담해온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박대원 이사장을 만나 2008년 취임 후 지금까지의 소회와 코이카의 다양한 지원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환경일보]박지연 기자=“한국이 옛날에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고 하면 모두가 깜짝 놀랍니다. 세계는 우리나라를 보고 ‘기적’이라고 말했죠. 하지만 그건 기적이 아니라 국민들의 노력과 열정, 희생이 이루어낸 찬란한 현재입니다. 또한 다른 나라들의 적극적인 원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박대원이사장1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박대원 이사장<사진=김경태

기자>


박대원 이사장은 6.25전쟁 후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절대적 요인으로 해외원조를 꼽았다.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원조를 하는 나라로 뒤바뀐 가운데 지난 2010년 11월 25일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3번째 회원국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을 벅찬 감동으로 기억하고 있다.

 

“DAC 가입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됐다는 것과 국민들이 낸 세금이 못사는 나라를 위해 쓰이고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준 것, 포기심리가 가득한 개도국들에게 ‘한국처럼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심어준 것, 또한 원조를 통해 유일하게 성공한 한국의 노하우를 궁금해 하는 원조국들의 반응 등이 지난 4년간의 우리의 달라진 위상이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정부의 무상원조를 전담하는 코이카에서 5년째 사령탑을 맡고 있는 박대원 이사장은 외무고시 8기 출신으로 1974년 외무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38년째 국제관계 분야에서 몸담고 있는 베테랑이다. 한국식 원조가 세계로부터 주목받게 한 원동력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OECD DAC의 23번째 회원국으로

 

박대원 이사장은 “지금이야 환경부를 중심으로 ‘녹색성장’이란 전문용어가 일반화됐지만 과거 50년을 돌이켜보면 개발이란 명분아래 환경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환경적 조치를 통해 지금의 깨끗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나라의 환경적인 변화상은 개도국 원조현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못살던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디젤 양수기로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올렸다면, 개도국 원조현장에서는 태양광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양수기를 사용하는 등 처음부터 환경을 고려한 경제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경제발전하면서 도외시했던 환경문제 등도 고려해 원조계획을 짭니다. 개도국에겐 한국이 정말 고마운 존재죠.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개발 패러다임이었던 ‘성장이 먼저 환경은 나중’에서 벗어나 경제·사회·환경 친화적인 포용적 성장을 추구하자는 것이고 이러한 한국의 녹색성장 비전과 경험을 개도국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녹색성장 비전과 경험을 개도국과 공유

 

사실 우리나라가 DAC의 회원국이 됐지만 아직까지 국민총소득(GNI) 대비 선진국 수준인 0.3%에 훨씬 못 미친다. 정부에서는 2015년까지 국민소득의 0.25%를 달성하는 목표를 세워놨다. 이것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2억 달러인데 현재는 11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비록 작은 액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ODA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0여년동안 아프리카 등 못사는 국가에 계속 원조가 들어가고 있지만 과거와 오늘날의 상황이 똑같다는 거예요. 이것은 원조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미국과 유럽 등 기존 원조국들은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게 많은 현금으로 원조를 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개도국에서 원조국 바람대로 농어촌 개발, 학교 및 병원 건립 등에 쓰인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거죠. 한국식 원조가 주목받는 이유는 직접 가서 지어주고 사후관리까지 해준다는 거예요”

 

박대원 이사장은 ‘한국식 원조’가 더욱 특별해지기 위한 바람으로 공적개발원조를 뜻하는 ODA를 ‘오디에이’라는 영어식으로 부르지 않고 ‘오다(五多)’라고 부른다. 앞으로 전 세계가 한국식 공적개발원조를 가리켜 ‘오다’라고 부르도록 하겠다는 것. 그가 말하는 ‘오다’는 보건의료, 교육, 산업에너지, 공공행정, 농어촌개발 등 5개 분야에 집중해 우리가 축적한 빈곤 탈출 노하우를 전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캄보디아 씨엠릿 다일공동체
▲캄보디아 씨엠릿 다일공동체 현장에서 식판을 씻고 있는 박대원 이사장

 

한국식 ‘오다’가 세계 공적원조의 교과서가 되는 그날까지

 

“한국이 원조현장에서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원조를 받던 나라 중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기 때문이죠. 원조국들은 가난하게 살아보지 않아서 가난탈출 경험이 없지만 우리나란 다릅니다. 한국이 전후 폐허를 극복하고 경제규모 10위권에 오르기까지의 경험과 노하우를 개도국들이 열심히 따라하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 그랬듯이 지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 또한 농어업이 주업이다. 박 이사장은 이들 국가에 더욱 애착을 갖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항상 첫 번째로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전기였다. 마실 물을 만들기 위해 해수를 끌어다 담수화 하고, 농업용수를 위해 물을 끌어와 둑을 만들고,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는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전기를 신재생 에너지를 통해 해결해야겠다 해서 현재 코이카에서 주력하고 있는 것이 ‘녹색 ODA사업’ 이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예로 들자면, 두 나라 모두 농어촌 분야의 소득증대를 위해 코이카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멀리서 물을 끌어올리고, 물을 관리할 수 있는 둑을 쌓아주자 1년에 1모작에서 2모작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농가의 소득이 올라가니 부모들은 자녀들의 고등교육에 관심이 모아졌죠. 예전 우리나라의 농어촌 모습과 똑같습니다. 코이카에서도 직업훈련소를 세워 이들의 자녀들이 직업훈련을 받고 사회에 진출해 소득창출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녹색 ODA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거죠”

 

라오스 초등학교 지원사업, 현장견학

▲라오스 농촌지역에 초등학교 건립현장에서 환한 얼굴의 라오스 어린이들이 손을 흔들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2020년까지 녹색 ODA 30% 달성 목표

 

‘녹색성장’, ‘녹색원조’는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창안됐고 이명박 대통령이 ‘리우+20 회의’에서 공약한 글로벌녹색성장파트너십(GGGP)의 전 단계인 동아시아기후파트너십의 수행을 코이카는 이미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우리 정부가 밝힌 2020년까지 전체 ODA에서 녹색 ODA 30%를 달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녹색ODA사업을 전개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가진 기술력에 자부심을 느끼는 반면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신재생 에너지 관련 기업체들이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렸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번 정부회의에 갔을 때도 국내 태양광 업체들이 사업성이 안좋다보니 자금을 빌려준 은행에서 자금 회수에 나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돌려보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이 돼요. 우리가 하는 녹색ODA사업과 관련해 태양광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어요. 코이카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1년에 100개 이상의 세계 원조시장 입찰정보가 올라오고 있는데 영어문서 작성이 힘들다면 이 부분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국내 태양광 업체들, 해외로 눈 돌려야”

 

우리 정부의 해외 원조 콘셉트에는 ‘감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돼 있다. 이날 인터뷰하는 박 이사장 뒤편으로도 이 문구가 적혀있었다. 일본의 무상원조기관 자이카의 모토인 ‘일본 국익의 극대화’와 너무도 대조적으로 한국식 ‘오다’의 정신이 이 말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듯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가난할 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에 빈곤의 격차가 없었을까요? 내부에 빈곤층이 있음에도 도와줘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보다 못 사는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을 도와주는 것이죠. 코이카의 원조 모토가 ‘감사하는 대한민국’입니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01%, 국민 개인당 2천원씩 개도국을 위해 기여하고 있습니다.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금액이죠”

 

베트남 중부지역 초등학교 건립사업 기념식 현장
▲베트남 중부지역 초등학교 건립현장에서 이 지역 꿈나무들과 함께한 박대원 이사장

 

국민 1인당 기부금액,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2천원’

 

‘받은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돌려주자’는 얘기와 함께 박 이사장은 페루의 꼬라오라는 산골마을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계적 관광지인 잉카제국의 고대도시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에서 농한기가 되면 이곳 주민들이 컵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1달러에 팔았는데 질이 안 좋아 물을 3시간 이상 담아두지 못했죠. 우연히 지나던 한국인이 이를 보고 우리나라의 도자기 기술을 전수해 주고픈 마음에 도자기 학교를 세었고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기술을 전수해 주었어요. 3년이 지나 우리의 도자기 기술이 들어간 컵은 10달러에 거래가 되고 이 마을은 점점 부자가 됐어요. 집에 여유가 생기니까 어떻습니까. 가전제품을 하나 둘 들여놓게 됐는데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들로 채워지더라는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푼 정이 또 다른 감사의 마음으로 돌아와 결국엔 우리나라 제품이 세계로 팔려나가는 결과를 만들었던 것. 박 이사장이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페루 한국 도자기 학교 방문

▲페루의 꼬라오 마을에 있는 한국 도자기 학교에 방문했을 당시 자원봉사자들 및 현지인들과 함께 했다.

<사진=코이카 제공>

 

우리 정부의 원조 콘셉트, ‘감사하는 대한민국’

 

“앞으로 개도국들이 ‘한국 때문에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마음의 다짐을 좀 더 심화시켜주는 방향으로 적극 도와주는 것, 즉 물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를 심어줘야겠다는 것이 코이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바람이 있다면 OECD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면서 그 가이드라인 안에 한국의 빈곤탈출 경험을 더욱 부각하고 각국 정부의 원조기관들과의 ‘윈-윈’을 통해 그들의 재원을 활용하는데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pj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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