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염원 이끌 원동력, 대한민국 내부에 있어
안보동맹·경제력 등 활용해 과감한 대북정책 펼쳐야

 

광복 71주년, 분단 71주년이 됐다. 8·15가 광복절인지 건국절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항복선언을 했고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3대 구성요소를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할 때, 일제강점기 동안 국토를 유린당하고 주권을 강탈당하며 국민을 일제의 신민으로 강탈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 기간 동안 한반도에 한민족에 의한 국가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가 없었기에 선조들은 국가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이수현 변호사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는 영토를 가지지 못했고 국민들로부터 선출되지 못해 민주적 정당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국가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건국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해방과 건국이 주변 국제정세에 의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치열한 자주적 노력에 의해 이뤄진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선조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 얻어진 자랑스러운 조국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광복절인지 건국절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단말마적인 발악으로 미국, 중국과 동시에 전쟁을 벌이던 일제는 결국 숨통이 끊어지게 되고 해방은 바로 미군과 소련군의 남북한 점령으로 이어진다. 미국이야 수년 동안 일본과 태평양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히로시마 원폭 직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소련의 북한 점령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소련은 일본과 만주와 북한에서 고작 2주 정도 교전하고 만주와 북한을 획득한 것이다.

 

해방 후 3년은 각 지역의 군정과 정치세력이 부딪히고 격렬하게 상호작용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결과 남북한에 상호 이질적인 체제가 정립되고 분단현실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북한은 3년 동안 격렬한 열전을 치렀으며 오랫동안 상호적대적인 체제경쟁을 수행했다. 그 결과 한반도 남쪽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우뚝 서게 됐다. 이 대한민국 체제의 성립은 해방과 한국 전쟁 직후의 경제적 정치적 폐허에서 이룩한 것으로서 그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동아시아의 동쪽 끝 반도의 절반에 위태하게 살아남은 허약한 자유민주체제 대한민국은 개발독재를 통한 급격한 산업화와 이를 토대로 형성된 중산층, 노동계층에 의한 평화로운 민주화를 단 한세대 만에 기적처럼 이뤄낸 것이다. 그럼에도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 내에서의 근대적 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개항 이후 140년 동안 지속된 염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절반의 성공일 뿐인 것이다.

 

남북통일은 북한지역에 인류 보편적 질서를 구현하는 것 외에도 한반도 차원에서의 근대적 민족국가를 뒤늦게나마 수립하는 역사적인 일이다. 이 과업을 이뤄낼 원동력은 대한민국 내부에 있다. 남북통일은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험을 한반도의 차원에서 재차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관계는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의 비원을 염두에 두고 남한이 주도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통로를 활용해야 한다.

 

민간 부문이 존재하지 않다시피 하는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통로라면 북한의 정부와의 대화 협상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전쟁 직후 북한과 인접 동맹국의 화력에 겁먹은 남한이 아니다. 안보동맹과 경제력, 성공의 경험과 우월한 체제를 가진 오늘의 대한민국은 편협한 호혜주의에서 벗어난 과감한 대북정책으로 통일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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