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특성과 동물 상태 고려하는 진취적 방역시스템 기대

‘가축전염병예방법' 제20조에 의하면 시장·군수·구청장 등 지자체장은 가축 살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살처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축산업 형태, 지역 여건, 계절적 요인, 역학적 특성 등 합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지자체들은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발병하면 무조건적인 살처분 명령을 내리기에 급급했다. 행정적 편의가 우선이었다.

처분명령 여부와 처분 범위를 두고도 이견이 분분하다. 지자체는 농식품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고, 농식품부는 지자체 결정 사항을 승인만 내줬다면서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수준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 것인지 답답하다. 많은 관심과 우려를 유발한 참사랑농장의 경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17년 2월27일 동물복지축산농장 참사랑농장에서 2.1㎞ 떨어진 한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참사랑농장은 AI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익산시는 ‘예방적 살처분’이란 명목으로 살처분 명령을 내렸다. 역학조사도 없이 오로지 AI 발생 농장에서 3㎞ 이내에 위치한 ‘보호지역’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익산시가 참사랑농장의 산란계 5000마리에 내린 살처분 명령을 철회했지만 농장은 1년 넘게 갖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특별한 사육환경을 유지해 감염 징후도 없는 건강한 동물들을 단지 감염 우려만을 기준으로 죽이라 하는 명령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전염병의 인과적 역학관계를 우선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선택적인 살처분 조치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아닌가.

멀쩡히 살아서 달걀 낳고 그 달걀이 하자 없이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규정을 빌미로 기어이 닭들을 살처분하겠다는 지자체 공무원의 진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검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살처분을 일관하는 것은 최악의 행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무조건적 살처분을 벗어나 농장 특성과 동물 상태를 고려하는 방역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2016년 12월 경남 양산시에서 AI가 발생하자 가축방역심의회는 3㎞ 이내 가금류 살처분 명령을 내렸지만 양산시는 500m 이내로 범위를 축소했다.

화성 산안마을의 경우 인근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지만 유기축산 방식의 특이성과 닭들의 건강 상태 등을 인정한 화성시는 예방적 살처분을 명령하지 않았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다시 발생해도 농장별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차별화된 조치를 취하도록 지자체들도 각성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물을 좋은 조건으로 키워온 동물복지농장을 일반 축산농가와 똑같이 취급해 의지를 위축시키는 것은 지속가능한 행정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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