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꺼버린 에어컨이 무색하게 한낮 더위는 그야말로 여름의 꼬리를 놓지 않았다. '추석이라는데 이거 계절이 뭐 이러냐'고 내뱉던 사람들. 그런데 엊그제 한차례 비를 뿌리더니 하늘은 금새 붉은 세상과 쌀쌀함으로 계절의 섭리를 일깨워준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유난히 추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걱정사이로, 온갖 곡식과 각종과일이 금년 유례없는 풍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시골에서 나지 않아도 마음만은 고향이라고 도시사람들에게도 농촌의 풍년소식은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풍작소식이 농가에서는 그리 달가운 소식만은 아니라니, 기자는 조금 의아한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유례없는 풍작'의 통계보도는 다음 해 농가에 상당한 걱정과 불안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 내 서울사람들은 쉬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인 즉, 바로 그 통계란 것이 다음해 정책을 연결짓는 잣대가 된다는 것인데 눈에 보이는 대로 해결하려드는 즉흥적 정책이 문제인 것이다. 흉작이나 풍작이나 이래저래 걱정을 끼고 살아야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단면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쌀시장 개방에 따른 정책일환으로, 우리쌀 소비를 높이기 위한 기능성 쌀들이 나오고 있다. 비타민쌀부터 칼슘쌀, 당뇨에 좋다는 고아미에서 급기야 먹되 살이 안찐다는 비만억제용쌀까지 출원이 된다고 하니, 이러한 당국의 대처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손가락으로 잠시 틀어막는 임시방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과일과 곡식 등, 농산물이 많이 소비된 추석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풍작으로 농가에 쌓여있는 많은 과일과 곡식들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풍작이라고 해서 모든 농가가 풍요로워지는 것만은 아니다. 진정 마음의 고향을 풍요롭게 하려면 즉흥적 대처보다는 일관성있고 꾸준한 당국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심해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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