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과 그 우유를 매일 아침 배달하는 사람. 두 사람 중 과연 어떤 사람이 더 건강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리고 그 답을 실행하기 위해 미국의 건강증진 전문가이자 미국건강증진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마이클 오도넬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오도넬 교수가 말하는 진정한 ‘건강도시’의 의미를 들어봤다.

불편한 도시가 바로 ‘건강한 도시’

국민의 건강 증진이 왜 중요할까. 우리나라도 급속한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에 반해 정작 그들을 돌볼 사회적 인프라는 전무한 상황이다. 고령화뿐만 아니라 서구화된 식생활로 성인병 환자가 급증하는 등 사람들의 체구는 커져가지만 결코 건강하지 않은, 즉 ‘속 빈 강정’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도넬 교수는 “항상 사람들이 더 많이 걷고 자전거를 이용하게 하기 위해 전용도로를 어떻게 하면 더 늘릴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며 “도시가 아름답게 개발되는 것은 결국 그만큼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빼앗겨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만큼 도시설계에 있어 보다 건강하고도 공학적인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자가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줄고 있다. 이에 따른 각종 성인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니, 이젠 성인병조차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비만인구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일부 주에서 10% 내외의 비만환자가 있는 것이 가장 높은 수치였지만 지금은 전반적으로 25%의 비만, 즉 네 명중 1명꼴로 비만입니다.”
오도넬 교수는 국내에서도 큰 충격을 안겨준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사이즈 미’를 언급하며 햄버거는 계속 두께가 두꺼워지고 있으며 음료 역시 사이즈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각종 패스트푸드로 인해 미국 내 고등학생의 98%가 영양은 없고 열량만 높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나 얼마나 그 위력이 큰지 알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오도넬 교수는 ‘랜드 유즈 믹스(land use mix)’를 제안한다. 되도록 사람이 땅을 밟도록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조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그는 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도시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오히려 시민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도시의 불편함은 과거보다 못한 퇴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곳에 기계화·첨단화를 적용할 게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포함한 건강증진을 위해 건설자는 물론이고 공학자들과 영양 전문가까지 함께 의견을 모아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건강한 도시(well city)’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건강 증진을 위한 노력의 정도에 따른 시상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한 번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 진화의 끝은 ‘비만’인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비만의 증가로 그간 인간의 진화도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원시인이 점차 직립보행을 하게 됐지만 여기서 진화가 끝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키는 줄고 배가 나오는 비만인으로서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예전의 ‘운동을 밥 먹듯 하라’는 말이 이제는 ‘밥은 안 먹어도 운동만은 해야 한다’는 말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며, 정작 이러한 건강 증진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은 바로 우리나라다. 식습관의 서구화로 유례없던 성인병이 증가하고 있으며 각종 정크식품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비만도 심각해 이젠 어린이 성인병까지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비만과 더불어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고령화가 지금의 현실이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제도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만큼 오도넬 교수는 건강 증진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적 접근을 정책 담당자가 아닌 NGO가 참여하고 활성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각 기관에서 건강증진 사업에 비용을 투자한 만큼 세금을 감면해 준다거나 그 정도에 따른 인텐시브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심으로 더 많이 걸어 다닐 수 있게끔 여건이 조성된다 해도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효과를 보기 어려운 노릇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식습관이 바탕이 된 후에야 진정한 건강한 도시, 건강한 가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강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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