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환 교수
고려대학교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사)한국물환경학회 부회장


최근 우리나라의 R&D 투자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재경부는 ‘2005 OECD 과학·기술·산업 득점실태’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지식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9%로, OECD 회원국 가운데 4위라고 밝혔다.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룩해 가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이 R&D투자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R&D투자 정책이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특히 R&D투자의 양극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내 민간기업의 R&D투자는 대기업이 79%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기업 중에서도 매출액 기준 상위 20대 기업의 총 연구개발비가 9조3000억원에 이르러 민간부문 연구개발비의 55%나 된다. 그리고 대기업의 R&D투자 중 3분의2가량이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 상위 3개사에 몰려 있다. 이들 민간기업의 R&D는 기본적으로 제품생산을 위한 상용화(Commercialization)가 목적이다.
특히 정부까지도 상용화에 기반을 둔 R&D정책을 추구하고 있어 정책적 균형감각 상실에 따른 위험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연구와 정책연구가 부족하면 원천기술개발이 미흡해지고 그 결과 기술로열티 지급이 증가하게 된다. 이미 우리기업들의 대외 로열티지급이 지난 4~5년 전의 3~4%대에서 현재는 10%에 육박하고 있다는 유럽특허청(European Patent Office)의 데이비드 링구아(Davide Lingua) 지적재산권 담당과장의 지적을 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IT 분야는 휴대전화·디지털카메라·평판 TV같이 경소단박(輕小短薄)한 제품을 단기간 동안 개발하되 그 기술의 수명주기도 매우 짧다. 반면 환경분야, 특히 물 산업분야는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지닌 사회간접자본(SOC)의 성격을 지닌 상ㆍ하수처리장, 상·하수관거 시스템같이 장기간 건설되고 기술주기가 긴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시설을 다룬다. 그리고 만들어놓은 제품도 장기간 기술적 검증을 거쳐야 하는 특성 때문에 R&D 역시 이러한 산업적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1992년부터 추진된 G-7 프로젝트 이래 지금까지 추진된 물 산업 분야의 R&D는 기본적으로 ‘상용화’의 개념으로 추진되고 있다. 물론 이론적인 혹은 정책기획적인 R&D도 있으나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보면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우를 범한다고 한다. 상용화 R&D는 민간기업의 몫이며 그들의 전문분야이다. 단기간 내에 돈이 되는 R&D라면 민간기업들이 굳이 까다로운 정부자금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인가. 정부의 R&D는 민간과는 개념부터 달라야 한다. 특히 물 산업 분야 R&D는 민간기업이 손대기 힘든 분야이면서 장기간 기술과 자본을 집중해 딴 나라들이 투자하기 힘든 분야에서 상품성을 지닌 패키지화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야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현재 상용화 위주의 환경분야 R&D는 IT분야의 정책을 모사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정책입안의 배경을 보면 성장동력을 창출해 기업과 국민이 먹고 살 기술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즉 IT분야는 휴대전화다, 평판 디스플레이다 하며 수출산업으로 각광 받고 있으니, 환경분야도 그리 돼보자는 식의 과도한 의욕이 오히려 물 산업의 발전과 기술개발 의욕을 저해하지 않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지난 2004년 1월 국내 유수의 사기업 연구소에서 하수처리 분야 신기술-신공정을 조사한 결과 모두 65개의 상용화공정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2004년 기준 한국의 하수처리장 수가 268개인 점을 감안하면 상용화 R&D → 신기술·신공정·특허 → 현장적용의 흐름으로 돼 있는 현재의 상용화 지향적 R&D정책이 과연 현실적인지, 그 부작용은 무엇인지 정책적 대안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그런 R&D정책 배경으로 만들어진 소위 신기술에는 세계적으로 수출할 만한 기술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제 물 분야 R&D정책은 규모의 확대뿐만 아니라 개념의 전환(Paradigm shift)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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