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린벨트’라는 학술적인 용어를 우리나라 정책에 처음 도입한 사람이다. 그린벨트는 당시 영국 런던만이 유일하게 성공시킨 제도였다. 외국에서는 ‘20세기 각국의 국토 계획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환경보전 정책의 백미’라는 극찬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대도시 주민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준 박정희의 최대 걸작’이라는 칭찬을 받았던 그린벨트. 그는 경제발전이라는 거국적인 계획과 함께 이미 30여 년 전부터 환경보전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21세기 인류의 과제는 ‘환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넓지 않은 국토에 조밀한 인구밀도, 급격히 늘어나는 자동차…. 우리 국토는 하루가 다르게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고속도로·국도 및 지방도로 뒤덮이고 있다. 이미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강모래는 없어진 지 오래고 인천앞바다의 모래마저 동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백두대간의 흙은 하루에 여의도 면적만큼 개발에 투자되고 있다.

얼마 전 건교부에서 마련한 제4차 국토종합계획에서는 세로 7개·가로 9개의 고속도로망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것은 남한의 땅을 고속도로로 80조각을 내는 계획이다. 물론 주요계획인 합리적 수송분담 연계를 통한 통합 교통체계를 형성해 전국 어디서나 30분 내에 접근할 수 있는 기간교통망을 구축해 친환경적 교통체계를 구축한다는 좋은 취지지만 국토종합계획의 광역권의 전략적 개발구상과 7×9 고속국도 망을 중첩시킨 결과 상호연계성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강원·충북·경북·전북의 인구 1000명당 도로 연장 및 고속국도 연장이 여타 지역보다 낮은 수준이 아닌 상황에서 환경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7×9 격자형 고속국도망을 배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만약 건교부가 밝힌 대로 제4차 국토종합계획이 시행된다면 자동차가 시원한 도로를 달릴 수는 있지만 좁게는 마을과 마을, 이웃과 이웃을 갈라놓고 넓게는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아름다운 숲과 생태계를 사정없이 조각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 7×9 격자형 고속국도망은 효율성도 떨어지고, 특히 백두대간 생태축으로 보전할 지역은 국토계획상 기능배치 구상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생태환경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 게다가 고속국도망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은 교통의 결절로서 중요한 산업 및 정주기능을 배치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현행 7×9 격자형 고속국도망은 이와 부합하지 않는다.

개발이 우선이냐 환경이 우선이냐는 아마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나라가 선진국이냐 개발도상국이냐 따라 조금씩은 관점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지 10년이 됐고 제10위 경제대국이니 이제는 조금 관점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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