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병학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노자는 ‘어떤 인위적인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하지 말라’고 설파했다. 우주만물은 제각기 이치가 정해져 있고, 그 이치를 규율하는 도가 있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를 주장했다.
이러한 노자사상은 삼국시대 우리나라에 전래돼 민간신앙과 결합하면서 도사와 신선을 만들어냈다. 유학에서 하늘의 이치를 공부해 깨달은 사람을 성인군자라 하듯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도를 깨달은 사람을 도사라 지칭했고, 세속을 떠나 깊은 산 속에서 자연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신선이라 했다. 그러한 도사와 신선은 신비스러움 그 자체이다. 마치 신비한 요술을 부릴 듯한 긴 지팡이와 백발의 머리, 가슴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이 상징적 요소로 이미지화 돼 있다.
하지만 오늘날 도사와 신선은 우리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단어들이 돼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노자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다. 불로장생을 염원해 과거 연금술이 발전했듯, 생명공학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고 있고 명상법이 유행하며, 웰빙(Well Being) 붐이 일고 있다. CNN 방송은 영화 ‘페이스오프(FACE OFF)’에서처럼 성형수술의 차원이 아니라 얼굴 피부 자체를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자연보존 또는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정립하자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사실도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양은 동양과는 달리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에서 자연을 대립적이고 투쟁적인 관계로 바라봤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대 만인의 투쟁’으로 보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한 위험 대상으로 간주해 자연을 인간에 의해 규제되고 통제돼야 할 대상임을 강조했다. 영국의 러셋 경 역시 “인간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자연과의 투쟁, 타인간의 투쟁, 자신과의 투쟁 등 세 가지 싸움을 하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자비로운 어버이와도 같이 따뜻하게 포옹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추위와 더위, 가뭄과 홍수, 각종 병균과 전염 등으로 냉혹하게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과 싸워 이겨야만 비로소 인간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자연과의 그러한 싸움은 선(善)한 것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인간과 자연의 대립적 관계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20세기 인류는, 특히 미국과 유럽은 자연과학의 발달을 무섭게 진행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들을 생활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내연기관이 만들어지고, 비행기와 자동차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은 원자물리학을 한 단계 높이고, 핵폭탄을 만들어냈다. 인류는 전기와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산업사회를 꽃피우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플라스틱과 같은 전혀 새로운 재료로 만들어진 상품들을 접하게 됐다. 높은 생산성으로 많은 물자들을 만들어 냈다. 특히 미국은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진행을 통해 전 세계 경제력의 5분의 3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한 미국의 경제력에 경각심을 가진 세계 각국들은 너도 나도 서둘러 근대화를 촉진하게 됐고, 그리하여 개발은 지상명령으로서 한 치의 의심도 받지 않게 됐다. 드디어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월등한 지위를 확보하고 그 관계를 통해 보다 풍부한 생활을 영위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자연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너도 나도 자연을 통해 생산물을 누가 많이 획득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자연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이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희생을 강요한 욕망 충족을 시도했다. 그 결과 많은 산림들이 베어져 나갔고, 무한한 양의 오염물질들이 하늘로 뿜어졌다. 또 엄청난 오염물질들이 땅으로 버려졌다.

오늘날 인류는 자연보존 또는 환경보존에 대한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정립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과 관련해 20세기의 최대 수난기를 거쳐 21세기 최대 보존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역시 20세기 석유를 에너지로 하는 산업을 ‘굴뚝산업’이라 지칭하고, 굴뚝산업의 퇴조를 예언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다양한 영역에서 친환경적인 제품들을 개발·생산하고 있고 정부들은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혹자는 향후 친자연적 상품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긍정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연보존에 대한 회의적 시각 역시 존재하고 있다. 오염을 배출할 권리를 돈 주고 거래하는 모습에 세상 참 많이 변했음을 인식하면서 혹시 물뿐만이 아니라 공기도 사먹게 되는 것은 아닌가,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등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이제 누구나 운동경기에서 스포츠맨십이 필요하듯, 자연에 관해서도 자연맨십을 가져야 한다. 자연맨십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자연과 나는 하나’라는 정신이다. 그러한 자연맨십은 자연을 결코 이기려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자연을 위해 사용한다. 자연맨십의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을 화내게 하지 않는다. 자연을 속이지도 않는다. 노자는 그러한 자연맨십을 대도(大道)라 표현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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