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음료·주류 광고에 유행처럼 쓰이던 ‘○○m 지하에서 뽑아 올린 천연 암반수’라는 문구가 있다. 이 말이 들어가면 왠지 더 깨끗하고 신선해서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단다. 청정한 물을 사용해야 할 제품이라면 한 번쯤은 사용하고픈 표현이다.

그런데 깨끗함과 안전함을 상징하던 이 단어가 어느 때부터인가 무색해지고 있다. 과거 무책임하게 장기간 방치된 오염으로 인해 지하수의 청정함과 안전이 더 이상 보장받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이천에서 주민들이 십수년 전부터 마셔온 지하수에서 우라늄이 검출됐는데 미국 음용수 기준치(30ppb)의 54배를 초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정도로 오염된 물이라면 단기간만 마시더라도 인체에 축적돼 신장이상이나 암 발생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주민들을 정말 분노케 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약 4년 전 이곳에서 불과 몇 ㎞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라늄이 다량 검출됐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고, 방임 결과 줄일 수 있었던 피해가 수년간 누적돼 왔다는 것이다. 주민 정서를 고려한다는 핑계로 예상되는 피해의 강도를 지나치게 축소시키고 쉬쉬 하던 중 오염된 지하수를 마시도록 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일으킨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는 분명한 직무유기다.

그런데 이렇게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 한 예로 과거 강원도 태백의 한 광미침전지에는 엄청난 양의 아연슬러지가 매립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지역주민 및 환경에 대한 바른 보호대책 없이 개발돼 문제가 됐었다. 토양오염도 측정 결과 비소성분이 기준치를 훨씬 초과했지만 해당 지자체의 묵인과 업자의 무책임한 밀어붙이기로 별 다른 조치 없이 스포츠 레저단지로 개발됐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중금속으로 인한 인체독성화와 침출수로 인한 하천오염 등으로 인해 한국판 이타이이타이병 사건이 재현될 가능성이 상존하는데도 말이다.

더 기막힌 것은 그 하부지역에 청소년 자연학습장이나 관광단지 등을 개발해 지자체가 공공연히 주민과 청소년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업자도 업자지만,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관광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무책임한 개발에 눈 먼 지자체는 지역 주민을 기만하고 환경에 무관심한 책임을 절대 면할 수 없다.

오염원이 발견되면 그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피해가 생기지 않을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묘한 논리로 피해가고는 나중에 막상 큰 피해가 발생할 때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관행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발생해야 개선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각종 오염물로 뒤범벅이 된 농지, 임야는 본지가 파악한 곳만 해도 한 두 곳이 아니다. 이런 곳들을 당장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방치하고 표본조사를 해보니 이상이 없었다고 큰소리치고 편 들어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란 말인가. 주민들도 각성해야 한다. 땅값이 떨어지네 마네 하면서 언론의 언급조차 무시하며 몸으로 막던 그 결과로 돌아온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대책 없이 감추고, 지역 이기주의로 문제를 덮어버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난개발의 관리감독을 실질적으로 강화해 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대해 안전이 입증될 때까지 개발을 유보하고 개발 이후 발생할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등 관련 제반내용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사고가 난 다음에 지하수 폐쇄조치만 신속하게 했다고 자랑 말고 제대로 된 사전조치에도 관심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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