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난 충남 태안, 사고발생 6일째 만리포를 찾았다. 썰물 때가 돼 전신을 드러낸 만리포 모래사장은 참담했다. 예전의 아름다웠던 모습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휘발성분이 날아가 끈적끈적해진 기름이 여기저기서 흘러내리고, 기름에 절어 검은 빛 일색인 모래사장은 이전의 모습과 대조돼 서글프게 느껴졌다.

기름이 흐르는 모래사장 사이에서 속살까지 기름으로 물들이고 죽어있는 바지락을 발견했다. 기름이 흐르는 물속에 반쯤 잠긴 채 온 몸에 기름을 두르고 죽어있는 바지락은, 기름으로 더럽혀진 서해안의 모습을 투영한 듯 해 쉽사리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한동안은 서해안의 수많은 생물과 아름다운 풍광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서해안의 잃어버린 풍광만큼이나 속상했던 것은 만리포가 더 이상 바다 냄새를 풍기지 않는 다는 사실이었다. 짭조름하고 신선한 바다 냄새가 사라진 자리에는 매캐한 기름 냄새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독한 냄새는 기름유출 사고의 심각성을 피부로 와 닿게 만들었다. 나의 후각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해 이번 사건이 단순한 재해를 넘어선 재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내 일이라고 여기는 손길들
12시 만리포 해안 여기저기서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식사가 마련된 것. 하지만 봉사자들 중 누구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조금 있으면 밀물인데 그 전에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더 없애겠다는 마음이다. 독한 냄새로 인한 두통, 구토감, 어지럼증이 괴롭지만 봉사자들은 흡착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방금 흡착포가 지나간 자리가 금세 스며 나오는 기름 때문에 검은색으로 변한다 할지라도 꿋꿋하게 다시 방습포로 기름을 찍어낸다.

그렇게 흡착포를 들고 기름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봉사자들 사이로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캐나다 국적으로 현재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매체를 통해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 왔다고 한다. 바다는 어느 한 나라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녀의 말에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말을 마치기 바쁘게 흡착포를 집어 드는 그녀를 방해 하지 않기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신진항에서 파도리쪽으로 들어가는 바다는 비교적 깨끗해 보였다. 원래 바다가 지니는 푸른 빛을 보며 조금쯤 희망을 품어봤다. 하지만 잠시 푸른 빛 꿈에 젖어 있었던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파도리 쪽으로 갈수록 검은 기름막이 수면을 덮고 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바다가 깨끗한 것은 기름이 완전히 제거됐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처음부터 유화제를 대량 살포해 기름을 바다 속으로 가라앉혔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면 밑으로 내려간 기름덩어리들은 파고가 높아지면 다시 수면으로 떠올라 기름막을 형성한다고 한다. 희망은 없는 것일까.

파도리에서 신진항으로 돌아오는 길 파도리 해변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눈물로 해변의 돌을 닦는 어민들이었다. 손에 들린 걸레보다 더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마음이 한 방울의 눈물로 화했다.

지금 태안 일대에서 희망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기름 때문에 날지 못하고 죽어갈 조류를 구조한다는 사람들처럼 당장은 크지 않더라도 조금씩 노력해 간다면 그 노력이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태안=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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