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는 정월 대보름 다음날인 22일 오전 가은읍 성저리 및 모산굴(경북도 기념물 27호) 일원에서 임진왜란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전승돼 온 ‘모산굴 기세배 굿’을 인근 주민들이 모여 한바탕 전통농악과 함께 재현했다.

이날 행사는 가은 불우리 농악단과 성저1리 주민 등 약 400여 명이 참여 성저1리 마을에서 ‘모이는 마당’과 ‘기싸움 마당’을 시작으로 이후 모산굴로 이동한 다음 풍물놀이와 위령제를 지낼 예정이다.




한때 문경시 관내는 물론 상주, 괴산 등 인근 시군에서까지 20개 이상의 마을에서 참여할 정도로 많은 성황을 이루었던 기세배는 일제시대에 중단이 된 후 자꾸 마을에 우환이 생기자 1993년부터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까지 매년 행사를 치루고 있다.

전국적으로 기세배의 형태로 나타나는 곳은 전북 완주와 김제 일원과 충북과 충남 일부에서 보이고 있으나 문경모산굴 기세배처럼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놀이방법 등에서 차별화 될 뿐 아니라 경북지역에서는 좀처럼 쉽게 볼 수 없어 그 전승 가치가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문경 모산굴 기세배의 유래
임진왜란 때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모산굴에 피신해 있었다. 모산굴 안에는 물이 꽤 많아서 피난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당분간은 별탈없이 잘 지냈으나 날이 지날수록 습하고 침침해 옷을 빨아야만 했다. 그래서 햇볕이 있는 굴밖에 널어놓았는데 그것을 왜놈들이 발견하고 독이 있는 나무를 태워 굴속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을 질식시켜 죽였다. 모산굴 앞에서 관찰해 보면 이 굴은 바람이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연기가 자연스럽게 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후 모산굴에는 뭇귀신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굴 출입을 삼갔다. 그런데 동네에 흉한 일이 자주 생겨났다. 점치는 무당들에게 물어보니 그 사건으로 인해 흉한 일이 생겨나며 그들의 혼을 달래주면 동네가 편안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 몇몇 사람들의 의논을 통해 매년 정월 열엿새 귀신달군 날에 뭇귀신들을 위안하는 위령제를 지내게 됐는데 그 이후로는 마을에 흉한 일이 없이 잘 지내게 됐다. 처음에는 성밑 마을만의 위령제였으나 이 굴에서 굿을 하면 잘 된다는 소문이 나자 한 해 두 해가 지난 뒤 인근의 다른 마을에서도 참가하게 됐다. 그래서 이 부근에서는 '성밑 굴 빈다', '기세배 한다'고 하면 많은 마을들이 각기 풍물패를 이끌고 왔다. 풍물패가 가장 많이 참여할 때는 20개 마을 이상이 참여했다.
이 모산굴 제의는 일제 강점기 이후 중단됐다가 마을에 우환이 많아 1993년 다시 복원 현재 제를 지내고 있다.






문경 모산굴 기세배 놀이순서
모이는 마당-기싸움 마당-화합마당-위령제-풍물마당-풍물 오방진-기놀이 및 개인놀음-대동놀이

첫째마당 - 모이는 마당
정월 열 엿샛날은 예로부터 귀신달군 날이라 하여 굴 속에 있던 귀신들이 밖으로 나오는 날이므로 그 안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풍물을 쳐도 괜찮다는 소문이 나 그 날을 맞춰 인근 수 많은 풍물패들이 자기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위해 모이기 시작한다. 한편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성저리의 모산굴 마을에서는 자신들의 위용과 과시를 나타내기 위해 힘이 센 장정들을 마을 입구에 세워두고 큰 깃발(대나무의 길이 약 30자)에 마을의 상징인 농기와 용기 그리고 2개의 영기를 세워놓고 들어오는 풍물패를 반기는 척 또는 겁을 주는 척하며 대한다.

당시 모전에서 오는 풍물패는 가장 큰 규모로 약 40명(각본 30명)의 힘이 센 장정으로 구성되어 오므로 반겼고, 하괴리의 풍물패는 약 15명으로 성저기 앞에서 공손한 인사와 함께 기를 숙여야만 됐다. 그 무렵 약 두 갈래의 큰 길에서 4개의 풍물패(15개 풍물패는 구성상 어려워서 4팀으로 줄여 재현하기로 함)가 자기들의 풍물패를 과시하기 위한 큰 기를 앞세우고 질굿을 힘차게 치면서 모여들었다. 중앙에는 성밑마을풍물패가 자리잡고 좌측에는 모전과 새원마을풍물패, 우측에는 은척풍물과 하괴풍물이 약한 풍물소리와 센 소리를 다양하게 내며 입장한다.

둘째 마당 - 기싸움 마당
성저의 터줏마을 풍물패는 큰 농기와 용기, 영기를 잡고 마을에 들어오는 풍물패와 대치를 하며 실랑이가 벌어진다. 때로는 두어 발자국 들어가려다 서너 발자국 나오고, 약한 풍물패는 더 밀린다. 좌측이 뒤로 밀리다 힘을 내어 다시 밀고올라가며, 우측은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좌측의 모전, 새원마을풍물패가 더욱 밀어내어 원 모양의 진을 이루면 점점 멍석말이 형태가 되어 난장판이 된다. 드디어 한 쪽에서는 기를 빼앗기고 깃대가 부러지게 된다. 한 쪽은 기세 당당하게 밀고 들어가고 또 다른 한 쪽은 기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치배들은 질굿에서 휘몰이굿으로 바뀌며, 힘을 돋구어 준다. 기를 보존하기 위해 힘센 장정들이 막아서며 잡색들, 따라온 구경꾼들이 합세하여 이 곳을 통과하게 된다.

셋째 마당 - 화합마당
한바탕 다툼은 사라지고 서로 언제 그랬느냐고, 인사하고 성저 터줏 풍물패를 따라 사이 좋게 굴앞으로 입장한다. 이 때는 힘차고 흥겨운 질굿을 치되 신나게 풍물도 치며 입장한다. 앞에서는 상저의 상쇠가 돋보이게 입장을 하고 따라가는 여러 풍물패는 각자 흩어지지 않고 질서정연하고 엄숙하게 굴 앞까지 뒤따라간다. 이 때, 가장자리에 있는 잡색들과 상인들은 주위에 진을 치고 손님맞을 준비를 한다.

넷째 마당 - 위령제
굴 앞에서는 타지에서 모셔온 무당과 제례음식이 가득하며 이 마을의 높은 어른의 주제로 위령제가 시작된다. 각 치배들은 기를 앞세우고 절을 세 번 하며, 굴 앞에서 이 마을의 위령제 순에 따라 엄숙한 마음으로 자신과 마을의 소원을 빈다. 무당은 간단한 가락에 맞추어 위령제를 집도하고 소지를 올린다. 그리고 약간의 살풀이춤을 추고 맺는다. 그 후, 각 치배들은 신나게 한판 풍물굿을 울리며 흥겹게 놀며, 굴 안이나 둘레를 악기를 치고 다닌다. 이어 잡색들과 구경꾼, 장사꾼도 굴앞에서 소원을 빌고 굴을 향해 절을 한 다음 치배들에게 음식을 권한다.

다섯째 마당 - 풍물마당
성저(본 마을)의 상쇠 신호에 따라 넓은 마당으로 같이 나오며 힘차게 풍물을 친다. 앞에는 각 마을에서 가져온 깃발을 들고 한 줄로 큰 원을 그리며 둘러선다. 각 마을에서 온 다양한 기는 바람에 나부끼고 온 산천을 뒤엎을 만큼 장관을 이룬다. 흥이 난 치배들의 풍악 소리가 구경꾼의 함성과 함께 어우러져 큰 풍물판을 이룬다. 치배들은 그동안 익힌 재주를 부리며 흥겹게 놀다가 상쇠의 가락에 맞추어 정렬을 한다. 이 때, 수많은 기는 가운데로 몰려와 자기들의 마을 풍물패를 자랑한다. 이어, 중앙으로 기가 모이고 멍석말이 진을 만든다. 가락은 삼채 → 된삼채 → 휘몰이로 맺는다.

여섯째 마당 - 풍물 오방진
둥글게 모인 다음 각 다섯 풍물패는 다섯 개의 작은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며 흩어진다. 다섯 개의 원속에는 각 위치에 맞는  蛇, 靑龍, 白虎, 玄武, 朱雀의 오방기가 들어간다. 각 마을의 장기를 춤메구, 질메구를 섞어가며 부린다. 가운데는 잡색이 다양한 몸짓으로 흥을 돋군다. 이 때, 구경하던 구경꾼, 잡색, 잡상인들이 바가지에 막걸리를 떠서 치배들의 입에 갖다대며 목을 축이도록 권한다. 치배들은 한 손에 채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흐르는 막걸리를 입으로 닦으며 한숨 돌린다.

일곱째 마당 - 기놀이 및 개인놀음
다섯 개의 원을 만들어 놀고 있던 풍물패들이 상쇠의 신호에 따라 질서 있게 한 줄로 원을 그리며 돌다가 형으로 선다. 이 때, 용기가 안쪽으로 들어와 힘차게 깃발을 날리고 상쇠는 중앙에 나와 신나는 상쇠놀음을 20초간 짧게 한다.

그 다음은 난타를 치고 개인놀음이 시작되는데 처음 순서로 돌림갓을 불러 내어 1분 정도 삼채장단에 맞추어 개인기량을 선보인다. 이 때, 마성풍물패에서 농기를 들고 한 두 바퀴 선회한다.

다음 난타를 짧게 친 후, 상쇠는 북을 불러 낸다. 힘찬 북소리와 함께 수북을 앞세우고 원을 그리며, 약 2분간 북놀음을 시작한다. 이 때는 모전의 농기가 큰 기를 펄럭이며 한 바퀴 선회한다. 개인놀음이 끝나고 나오는 치배들에게 잡색들과 구경꾼은 애를 썼다고 감사의 표시로 술과 떡을 주는 모습을 보인다.

다음 북놀음이 나가고 휘몰이 가락을 받아서 장구들이 입장한다. 장구놀음은 약 4분으로 굿거리, 덩더궁이, 휘몰이, 동살풀이 순으로 한다. 이때도 깃발이 나와서 선회를 하는데 은척의 농기가 나온다. 기수들이 큰 기를 들고 다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체의 배 부분 또는 등 부분에 얹어서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추임 소리와 환호를 지르며 힘들게 뛰는 치배들의 사기를 높여준다.

다음은 마지막 개인놀이로서 12발 상모놀이이다. 성저마을의 12발 상모 1명과 모전풍물의 12발 상모가 나와서 상쇠의 휘몰이 가락에 맞추어 연풍대와 자반을 하며 약 1분간 고난도의 12발 놀음을 한다.

개인놀음은 끝나고 흩은굿을 치며 가락은 맺고, 지역의 웃어른(당시 면장이나 관리 중의 한 사람)이 보조하는 어른 2명과 함께 나와 5개의 마을 중 기량이 뛰어나거나 흥겹게 노는 한 곳을 선정 그 풍물을 대표하는 농기의 가장자리에 1등 표시로 붉은색의 큰 도장을 찍어준다. 낙관을 받은 풍물패는 환호성을 지르며, 가지고 있던 소품이나 신고 있던 짚신을 하늘높이 던지며 기쁨을 나눈다. 그 외의 풍물패들은 북, 장구를 치며 축하해 주고 소리 높여 환호성을 질러준다. 이때가 가장 인상깊고 놀이로서 절정에 달한다.

여덟째 마당 - 대동놀이
각 풍물패의 흥겨운 놀이마당이 끝나고 저물어가는 해를 등에 업고 상쇠가 중심이 되어 큰 원을 그리며 안쪽으로 멍석말이가 시작되며, 기수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기를 흔든 후 맺는다. 이어 각 풍물패는 상쇠를 앞에 세우고 모산굴 앞으로 모여 3번 절을 하고, 각 고향 마을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은척풍물과 하괴마을은 우측으로 질굿을 치며 가고, 모전과 마성풍물패는 좌측으로 성저풍물패에 인사하고 농기 및 영기를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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