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봤다. 제목만 들으면 어느 날 우연히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만남과 사랑, 헤어짐의 뻔한 과정들이 있을 것만 같다. 뭐 틀린 것만은 아니다. 다만 사랑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점이 다를 뿐.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로드킬(Road Kill)’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로드킬’은 고속도로, 갓길, 차가 다니는 모든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을 지칭한다. 그 종류는 노루, 고라니 등 야생동물에서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까지 다양하다.

한국의 도로 총 길이는 10만㎞. 국토에서 도로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환경부는 2006년 한해 동안 한국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동물의 수는 5600마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영화는 지리산 근방 20㎞에서 30개월간 로드킬을 조사한 최태영, 최천권, 최동기 세 명을 좇는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 수치는 턱없이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태영씨는 “나 자신이 보고 싶어 했던 동물은 도로에서 다 봤다”고 말한다.

천연기념물인 큰소쩍새를 비롯해 구렁이, 유혈목이, 살모사 등 온갖 종류의 뱀, 부엉이, 너구리, 두꺼비, 삵…… 그 이름을 열거하기조차 너무 많다. 최태영씨는 “로드킬로 죽은 동물들을 도로 위에 점으로 찍어 표시했더니 결국 하나의 선이 돼버리고 말았다”며 “무의미한 작업을 한 것 같다”고 얘기할 정도로 로드킬은 흔하디 흔한 동물들의 죽음이었다.

로드킬을 한국말로 풀면 ‘객사’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집이 아닌 길에서 객사한 사람은 가장 안 된 죽음이다. 객사는 집도 아닌 고향도 아닌 곳에서 죽은, 몹쓸 죽음인 것이다. 로드킬로 죽은 동물들은 자신의 상위 개체에 잡아먹히는 것도 아니요, 자연사도 아니니 자연 순환의 원리에서도 벗어난다. ‘네 바퀴 달린 동물’에 죽음을 당해 생태계 순환에 어떠한 역할도 못하고 그저 바퀴에 깔려 죽는 것이다.

‘왜 동물들은 바보같이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다닐까’라는 의문이 드는가. 산과 강 사이를 끊고 낸 도로는 본래 동물들이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인간의 길이기 이전에 동물들의 길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그 위험천만한 4차선 도로를 건너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때 시속 140㎞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느꼈던 쾌감은 이미 죄책감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죽어갔을 수많은 동물들에게 죄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맞닥뜨린 ‘네 바퀴 달린 동물’을 보자 나도 모르게 도로를 건너던 동물들처럼 움츠러들었다.

<김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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