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에 때를 맞춰 반중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성화가 영국에 이어 프랑스 파리로 옮겨간 가운데 국경 없는 기자회 등 시민단체들의 반 중국 시위는 끊이질 않고 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중국이 티베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 정부가 침묵한 가운데서도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발언들이 심심찮게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배경 없이 떠도는 낱말 중에 하나가 '국익'이다. 국익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의미 변화를 겪지만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시초가 되는 것이 국익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은 포기한 채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것 또한 국익으로 정당화된 듯하다. 국민들 역시 일정한 의무나 정의, 어떠한 도덕적 판단기준은 포기한 채 국익을 단순한 물질적인 취득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듯하다.

미얀마 민주화사태 때도 침묵했던 우리정부의 대응은 국가적 이기주의나 다를 바 없다. 국익차원에서 행해진 이라크파병 역시 강대국의 눈치를 봄으로 해서 비롯된 것이라 보면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안 불허 역시 같은 경우에서이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달라이 라마를 중국정부에서 지정한 정치범으로 보는 소견만이 앞서고 종교지도자로서의 명성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일부에서는 티베트 사태를 한국의 80년 광주 민중 항쟁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티베트는 중국의 한족과는 구분되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채 수천 년을 독립국가로 유지됐다. 그 옛날 기미년만세운동이 일본정부에 대한 우리민족의 민주화요구가 아닐진데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로서는 표현에 좀더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정부가 건설한 칭장열차 역시 일본이 건설한 경부선과 그 목적이 다르지 않다. 영구 지배와 수탈의 목적이 숨어있는 것이다. 마지막 청정지역이라 일컫는 티베트의 자연환경은 칭장열차를 타고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중국의 철도건설을 두고 이점이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다.

결국 라싸에 이르는 이 열차는 인간의 모든 욕심과 이기심이 총집결된 바벨탑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환경은 히말라야 개발을 끝으로 균형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견해이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이미 사라졌고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는 끊임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12억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히말라야 북부 고원지대를 개발하려 들 것이다. 이는 곧 지구환경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또한 티베트는 티베트인의 손으로 지켜질 때에 가장 의미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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