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래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농업다원기능팀 연구원

창원 람사르 국제총회 논 결의안 채택을 바라며
전세계 경작지 중 논이 거의 유일한 습지 기능


세계인의 환경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람사르 국제총회가 올해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란 주제로 경상남도 창원에서 열린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창원에서 열리는 람사르 대회가 논과 무슨 관계가 있지?’라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이 땅에 가꿔 온 논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역할을 잘 들여다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아시아 몬순기후 지대에서 속한 우리나라는 여름철에 비가 많이 내려 고온다습한 조건을 가지게 되는데 여름철에 집중되는 빗물은 지형적으로 낮은 지대로 몰리게 된다. 따라서 낮은 지대는 항상 물이 풍부한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물이 많은 조건에서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경지가 바로 논인 것이다. 즉 물이 많은 조건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량작물로서는 벼가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벼는 물이 가득찬 논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재배하는 동안 논토양은 항시 습지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논은 여름철 벼 재배기간 동안에는 많은 수서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것이다. 즉 전 세계에 분포하는 경작지 중에서 습지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농경지는 논이 거의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최근에 농촌진흥청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논에 서식하는 수서곤충의 수가 222종인 것으로 밝혀져 생물의 보고임이 입증됐다. 이 밖에도 토양속 생물을 먹이로 하거나 떨어진 벼 알곡을 먹이로 하는 물새와 철새 등 수많은 생물들이 논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음이 밝혀져 습지생태계의 하나로서 논은 생물종의 다양성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논은 지하수함양, 토양유실방지, 기후순화, 수질정화 등과 같은 다양한 환경적 혜택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논은 다양한 수서생물이 사는 터전으로써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습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비록 람사르 협약의 규정상 논은 인공습지에 속하나 다양한 생물이 사는 서식지로서의 논의 가치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이번 창원 세계 람사르 총회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은 ‘논 습지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의 배경에는 과거 스페인에서 열린 제8차 람사르 총회에서 처음으로 농업결의안(농업, 습지 및 수자원 관리)이 채택돼 습지 보존과 지속가능한 농업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농업기술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며, 제9회 우간다 총회에서는 세계최초로 일본이 ‘카부쿠리 늪 주변 논 지역’을 습지로 등록해 논도 공식적인 습지로 공인을 받게 됐다.

아무튼 창원 총회의 주최국으로서 논이 갖는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기 위한 ‘논 결의안’이 공식의제로 채택돼 습지로서 논의 다양한 기능이 공인받게 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회원국들에게 논의 보존과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농업기술의 개발 및 이를 지원하는 농업정책의 수립을 권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논이 갖는 농업습지로서의 기능이 현명하게 이용된다면 인간과 생물이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카부쿠리 논 습지에서와 같이 논이 람사르 공식 습지로 등록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인 지원과 함께 지역농민의 동의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우리 농업이 식량생산뿐만이 아니라 생물다양성 유지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우리 스스로 가질 수 있으며, 논이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존할 가치가 높은 습지라는 것을 세계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농업의 위상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로 람사르 협약이란 지난 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채택된 습지에 관한 협약으로 ‘자연자원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해 맺어진 정부간 협약이다. 이 협약은 지난 1975년에 발효됐으며 현재 154개 회원국이 가입했고, 우리나라는 1997년에 가입했다(아시아지역의 가맹국은 27개국임). 한편 전세계적으로 1650여 개의 습지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목록에 등재돼 있으며 우리나라는 인제의 용늪과 창녕 우포늪 등 총 8개가 등록돼 있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