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보행자 도로 정비, 안내표시 미흡
잇단 사고발생에 관련기관 나 몰라라


강동구에 거주하는 호미숙(46세)씨는 지난 8일 서초구의 양재천변 자전거 도로에서 마주오던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호씨는 왼쪽 손목이 삐고 오른쪽 무릎과 왼쪽 정강이 살이 벗겨지는 부상을 입었다. 호씨는 “자전거 통행을 한쪽만 허용하면 폭이 1.5m밖에 안되는 도로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자전거 통행 표시가 잘못돼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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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서초구청은 “자전거가 충분히 지나갈 만큼 4m 넘게 도로 조성이 돼 있고 중앙선 기준 양쪽 모두 자전거 이용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해본 결과, 자전거 통행은 중앙선을 기준으로 한쪽만 허용돼 있었다.(사진1 참조) 게다가 자전거 그림이 표시돼 있던 같은 도로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양방향 모두 보행자도로 표시가 돼있어 자전거 도로를 찾아볼 수 없었다.(사진2 참조)

경제 불황에도 불과하고 여가를 즐기기 위해 한강 둔치를 찾는 인구는 연간 5천만 여명.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 소풍, 하이킹 등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특히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 애호가들이 한강도로변을 달리는 모습은 낯익은 풍경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늘어나는 이용자만큼 사고도 늘었다. 자전거끼리 부딪치기도 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계속되는 안전사고에 행정 당국은 대책 마련은커녕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관할구역마다 자전거 도로 통행법이 제각각이다. 뚜렷한 법안이 없다보니 각 관할마다 좌측 혹은 우측통행을 마음대로 정하고 있다. 한 예로, 하천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초구는 좌측으로 자전거 통행, 강남구는 우측 자전거 통행으로 표기돼 있다. 관할 구역을 넘으면 순간 통행 방향이 바뀐다.

도로가 콘크리트나 시멘트가 아니라 보행자 전용도로에서 사용되는 특수고무 재질이어서 사고 발생 확률을 더 키우기도 한다. 탄천변 도로를 이용한다는 분당 거주 김성일(33세)씨는 “마찰이 심한 고무 재질 도로에서 어떻게 자전거를 타란 말입니까?”라며 답답한 행정실태를 불평했다. 다른 구역을 보니 자전거 전용도로는 아스콘 포장으로, 보행자 전용도로는 특수고무 재질로 설치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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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파손된 자전거 도로도 여러 곳이었다.(사진3 참조) 계속되는 민원에도 파손된 도로는 수 십일이 지나도 시정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네이버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한 회원은 관련 구청에 민원을 접수했지만 “시정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자전거 도로의 특성이나 안전성 등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 시정이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회사원 김 모 씨는 2006년 가을 발생한 자전거 사고로 시청을 상대로 2년째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사고 당시 김씨는 도로 맨홀뚜껑 가장자리 틈새에 바퀴가 걸려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양쪽 손목인대 수술을 받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

이렇게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도 보상받을 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에 관한 보험은 없다. 다만 운전자 보험 등에 자전거 관련 사고 보상 내용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민형사 소송으로 가야 보험이 적용되는 약관이 많다. S보험회사 강모씨는 "사고 발생시 보험 적용이 힘드니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사진4]


자전거·보행자 도로 자체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와 보행자가 다니는 도로 사이에 펜스가 없고 폭이 좁아서(사진4 참조) 자칫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잠원 시민공원 안으로 진입하는 이곳에서는 펜스 공사가 이뤄질 때까지 아찔한 보행을 계속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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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치 계단에서는 사람들이 앉아 얘기를 나누며 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잡풀로 무성하게 방치된 곳들이 넘쳐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사진5 참조) 또한 보행자 도로변에는 무단 투기된 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옥수동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쓰레기통 하나 보이지 않죠. 무단 투기하는 시민들의 의식도 문제지만 쓰레기통이 없는 게 일차적인 문제에요. 사람들이 버린 캔, 페트병에 걸려 사고가 날 수도 있죠”라며 쓰레기통 설치를 주문했다.



▲ [사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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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다. 강에 누군가가 빠졌을 때 던지는 튜브가 강가에서 멀리 설치돼 있어 실제 상황에서는 사용하기 쉽지 않다.(사진6,7 참조) 튜브에서 강까지 적어도 20미터는 돼 보이고 그 조차 풀숲에 가려져 있다. 또한 넘어가지 못 하도록 펜스가 쳐 있어 사고 발생시 무용지물일 뿐이다. 따라서 보여주기식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 시설이나 안전 요원이 전혀 배치가 안 돼 있는 것 또한 문제다. 여건상 배치가 어렵다면 구급용구라도 설치해야 도움이 될텐데 둔치변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다. 한 제보자는 “얼마 전 시민공원에서 한 어린아이가 연줄에 얼굴을 베어 피를 많이 흘리는 것을 봤다”며 “곳곳에 응급 시설이 잘 돼 있었거나 연날리는 행위에 대한 기준이 있었다면 이같은 사고는 미연에 방지가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2007년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면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에 ‘한강 굴다리’, ‘한강 자전거도로 사인시스템’ 등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 공모에 참가했던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염성규씨는 “이런 사업들이 너무 미적인 시각으로만 치우쳐 실용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행정 대책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청계천 복원 사업 같은 경우에는 교통, 환경, 문화,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서울시의 한강공원 사업을 들여다보면 디자인, 미(美), 창조 등의 부드러운 도시 이미지만 부각될 뿐 실제 한강을 즐기는 시민들의 안전이나 편의는 배제시킨 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자전거타기 운동연합, 서울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안전시설이 부족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고 둔치 이용자 중 안전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시민들도 있는 만큼 도로 정비 및 안내 표시 재정비가 제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시민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을 시급히 보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종수 기자·사진=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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