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무얼 버리셨나요?

지구별을 건강하게 하는 착한 물건과 신나는 노동

 

에코북종이컵, 패트병, 기저귀 등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생을 살다가는 물건이 있다. 일회용품과 포장재가 아닌 물건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물건은 태어나는 순간 버려질 운명을 갖는다. 물건도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재활용 디자이너 연정태는 버려진 물건으로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 그는 버려진 물건의 본래 기능을 그대로 살려 조합하고, 물건의 본질이 사라져버릴 만큼 과도하게 치장하지 않으며, 재활용품 같지 않은 새로운 기능과 가치가 부여된 물건을 만든다. 함부로 버림받지 않는 물건이 많아질수록 쓰레기는 줄고 세상의 오염은 늦추어 진다.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물건은 저자의 손을 통해 자전거 트레일러, 바비큐그릴, 저울 등 쓰임새가 분명한 물건이 되어 집으로 귀환한다. 전시회장에서 생명성을 박제 당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서서히 마모되며 두 번째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28가지 물건의 재구성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물건을 만드는 방법, 과도하게 치장되고 마감된 물건 틈에서 제대로 된 물건을 보는 안목, 물건을 존중하며 물건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버려진 물건이 따뜻한 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나 극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한 편의 유쾌한 드라마 같다.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숟가락이 풍경이 되어 처마 밑에 매달린다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 자전거 트레일러에 아이를 시승한 후 발견한 문제점은 무엇일까? 저자는 물질문명과 소비유혹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를 몰아붙이며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뜻한 관점에서 물건과 생각의 재구성 과정을 보여준다.

손을 쓰는 일이 두렵고 귀찮다면, “이백 자 원고지 한 장을 채워본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있고, 상자 하나를 만들어본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저자의 응원에 용기를 내보자. 먼지 쌓인 연장통을 열 때 우리의 가슴 한 구석에 연장통처럼 웅크리고 있던 호모파베르(도구를 만드는 인간)가 고개를 들어 기쁘게 말을 걸어 올 것이다.

 

만들지 않고 만들기

물건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손재주 좋은 남편에게 아내는 나무를 사다가 화장대를 만들어 달라한다. 남편은 “재활용으로 만들까?”라고 묻지만, 아내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매만지는 공간인 화장대가 좀 더 특별했으면 하는 아내의 마음을 짐작하기에, 남편은 아내의 까다로운 심사를 전제로 화장대 만들기에 도전한다. 재료는 주워온 원목 의자 두 개. 다리를 자른 의자 두 개를 맞붙이니 금세 탁자의 모양새가 나온다. 맞붙인 의자를 뒤집으면 등받이는 안정감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다리가 되고, 의자의 앉는 부분 아래쪽의 보강재는 저절로 수납공간을 만들어낸다. 작업실에 있던 미송 판재로 상판을 얹어 탁자를 완성한 남편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내의 결정을 기다린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탁자의 희소성이 아내를 매료시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탁자를 본 아내는 반색하며 말한다. “화장대로 쓸래”

이 책의 저자 연정태의 실재 이야기다. 버려진 의자 두 개로 너무도 손쉽게 화장대를 만들어 아내를 매혹시킨 그는 땅에 묻히거나 소각될 폐품으로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재활용 디자이너다. ‘만들지 않고 만들기’. 그가 만든 물건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버려진 물건 안에 이미 형태를 갖고 있거나 부품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그대로 조합해 새로운 물건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는 ‘물건의 재구성’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러한 만들기 전략은 물건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본래 물건을 디자인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노력을 고스란히 활용하면서, 최소의 노력으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 물건의 권리장전

 

단 한 번 쓰이고 ‘쓰레기’라 불리는 운명들이 있다. 종이컵, 기저귀, 페트병 등이 그것이다 . 일회용품과 포장재가 아닌 물건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태어나는 순간 버려질 운명을 갖게 되는 물건, 저자는 물건도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버려진 물건을 재구성해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은 ‘함부로 버림받지 않을’ 물건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함부로 버림받지 않는 물건이 많아질수록 쓰레기는 줄고 세상의 오염은 늦추어 진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물건을 다시 태어나게 작업들은 퇴화된 손을 되찾고 물건의 본질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물건을 직접 만드는 일은 물건의 구매자가 아닌, 물건의 진짜 주인이 될 기회다.

 

과거가 있어 이야기가 있는 물건

 

재료의 과거는 새롭게 만들어진 물건에 이야기를 담는다.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줄 따뜻한 밥을 담던 스테인리스 밥그릇은 풍경이 돼 여느 풍경과는 다른 소리를 낸다. “밥 좀 주세요. 땡땡땡!” 과거가 있는 재료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재활용 물건만의 매력이다. 자전거 트레일러, 항아리 수납장 등 28가지 물건의 재구성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물건의 과거와 새로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만난다.

 

재활용, 버림받는 물건과 사람과 공간과 시간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일

 

저자는 재활용을 물건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노동과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을 참여시키는 것이자 낭비하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고 버려진 공간을 되살리는 일 또한 재활용이다. 이 책이 물건을 만드는 작업 과정에 초점을 맞춘 실용서가 아니라 에세이의 형태를 빌려 독자와 소통하려는 이유기도 하다. 물건의 재구성 과정 안에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생각의 재구성 과정이 늘 함께 한다. 신나는 노동과 건강한 생각이 만날 때, 우리는 육체와 마음이 모두 건강한 조화로운 인간에 한 발 다가서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연정태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버려진 가구나 오토바이를 분해해서 전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했지만, 약 3년간 공장노동자로 일하면서 각종 공작기계 다루는 법과 공작기술을 터득했다. 30대 이후 광고 디자인 회사를 10여 년간 운영하면서 전방위적인 상업 디자인의 현장 디자이너 겸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현대사회의 모순과 환경파괴 등의 문제가 생산과 소비의 폭력에서 시작됐음을 자각하고 40대에 시민단체에 들어가 재활용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가 깨달은 사실은 버려진 물건과 왜곡된 공간과 소외된 사람과 단체를 재활용하고 바로잡고 되살리는 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와 복지단체, 사회적 기업이 노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상품화할 수 있는 재활용 물건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서 제공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그의 꿈은 그가 발명하거나 디자인한 제품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이 많이 생겨나 장애우나 노인, 여성 등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좋은 일터가 곳곳에 자리잡는 것이다. 디자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물건의 재구성(아름다운가게)’과 ‘디자인을 바라보는 12가지 시선(바자코리아)’ 등의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재활용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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