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 또는 ‘개발도상국 콤플렉스’

 

‘세계 7대 녹색강국’ 진입 목표는?

 

사진(안병옥1)
정부가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중기(2020년) 감축안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유가와 경제성장율 등 경제전망을 바탕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BAU)를 산정한 후, 세 개의 시나리오(2020년 BAU 대비 21%, 27%, 30% 감축)를 제시하고 있다. 선진국에 적용되는 기준연도 배출량 대비 절대량 감축방식보다는 개도국형 경제성장 연동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시민사회의 입장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감축목표 설정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제시된 목표의 타당성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의 시급성과 그에 수반되는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기회를 포기한 일종의 ‘미필적 고의’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15위,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10위인 나라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3억 톤 가량에서 2006년 약 6억 톤으로 늘어나 증가속도가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르다. 연간 1인당 배출량도 2006년 10.53톤으로 독일(10.4톤), 일본(9.78톤), 영국(9.66톤) 등의 선진국을 추월한 상태다. 역사적인 책임을 뜻하는 온실가스 누적배출량도 세계 21위권에 속한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의무감축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개도국형 목표를 제시한 것은, ‘개발도상국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재계는 정부가 제시한 감축목표가 부담스럽고 공식적인 발표 역시 성급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 지위를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가 스스로 감축목표를 제시한 것은, COP15를 앞두고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협상에서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까지 덧붙여진다.

 

하지만 재계의 이러한 태도는 몇 가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먼저 온실가스 감축의 ‘시급성’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여느 문제와는 달리 여건을 봐가면서 느긋하게 접근해도 좋은 사안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방치하면 대처 비용이 전 세계 GDP의 5~20%에 달해 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에 맞먹는 경제적 파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스턴보고서의 경고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기후변화는 현재진행형이며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감축비용이 부담스럽다지만 지구온난화가 진행될수록 기업의 지불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과감한 감축의 ‘당위성’이다. 최근 IPCC의 의장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에 동조하고 나선 것은 이전의 기준이 너무 낮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 대비 25~40%는 반드시 감축해야 한다는 기후변화협상의 가이드라인이 450ppm 유지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른바 과감한 감축(deep cut)의 당위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세 번째는 감축의 ‘불가피성’이다.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약하고 일인당 국민소득도 낮은 나라들까지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 당장 감축의무를 피한다 해도 곧 그 값을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방식 합의에 실패할 경우, 탄소관세 도입과 함께 무역전쟁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일부 수출산업의 경쟁력 약화 우려는 별도의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지 느슨한 감축을 주장하는 구실이 돼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적용한 BAU 대비 감축목표 설정방식은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유가, 경제성장률 등 대단히 불확실한 경제변수에 의존하기 때문에 장래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늠하기 어렵다. 유가, 환율 등 외부 경제변수의 변화폭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몇 개월 단위 경제 전망조차 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물며 10년 이상의 장기전망의 경우에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유가나 경제성장률이다.

 

‘경제주체가 감내 가능한 일정수준의 비용’ 이하의 감축수단만을 고려한 것도 문제다. 산업별 또는 업종별로 온실가스 배출 한계저감비용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정기업에는 큰 부담이 되는 감축비용이 다른 기업에게는 감내할 만한 부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라면 기업은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움직인다. 두 달 전 삼성전자가 향후 5년간 5조4000억원을 투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겠다고 나선 것이 좋은 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지난 7월 선언했던 ‘세계 7대 녹색강국 진입’ 목표가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2020년 BAU 대비 최대 30% 감축 수준으로는 우리나라의 녹색성적은 세계 50위권 밖으로 밀려나, ‘녹색후진국’으로 남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누가 뭐래도 정치적 의지에 달린 문제다. 정부가 진정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BAU 대비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이라는 강박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최소 20% 감축수준은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논란의 대상인 4대강 사업 예산을 줄이고 나머지를 교육ㆍ복지와 기후변화 대응에 나눠 사용한다면, 2005년 대비 20% 감축목표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닐 것이다. 국민들과 기업에게만 고통을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는 국가예산의 배분을 포함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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