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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자동차산업의 하향세 가속화

 

전기차는 융·복합 산업의 총화

 

전 세계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미국의 디트로이트. 자동차의 ‘빅쓰리’인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한곳에 모여 세계 자동차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 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던 자동차의 성지가 몰락의 벼랑길에 서있다. 사상 초유의 고유가와 지구 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문제, 그리고 지난해부터 갑자기 밀어닥친 금융위기라는 삼각파도는 한때 미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이 도시를 침몰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을 증명하는 것은 한없이 떨어지는 집값이다. 현재 디트로이트의 평균 집값은 8000달러. 지난 2005년 8월에는 5만9700달러에 비하면 거의 1/7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1억원으로 미국의 중산층이 살 수 있는 집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는 IMF 시절 우리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 정도라면 도시 전체가 파산했다고 해도 전혀 무방한 수준이다. 한편으로 심각한 실업률에도 일자리가 계속 줄다 보니 사람들은 직업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그 결과 투자자들 역시 외면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산업을 지탱하는 생명선인 노동력과 자본이 이 도시를 떠나리라는 전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미국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노조와 그들의 요구에 타협한 경영진은 눈앞에 닥친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오랫동안 스스로 외면해 왔다.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는데 바빠서 남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까지 무시했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금 치루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에 대한 미국 내의 자본의 흐름은 이미 정해졌다. 디트로이트의 위기를 이미 감지한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처로 캘리포니아의 전기자동차 관련 기업들에 주목했다.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전혀 불투명한 기존의 자동차산업에 투자를 하기 보다는 오히려 성장가능성이 예측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페이팔(Paypal)이라는 인터넷 결제기업의 창업주였던 엘론 머스크는 회사를 판 자금으로 테슬라 모터스라는 전기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는데, 구글의 회장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여기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또한 프로젝트 베터플레이스라는 한 벤처기업은 특허 하나 없이 1라운드 펀딩에 2억 달러 유치에 성공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번 충전으로 160Km 정도밖에 달리지 못하는 전기자동차의 한계를 곳곳에 충전소나 배터리 교환소의 설치로 극복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이런 거금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 반도체 산업의 주역이자 미국의 실업률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는 데 기여한 공로로 타임지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던 인텔의 전 회장 앤디 그로브는 “내 생전 이렇게 급속하게 성장하는 산업을 본 적이 없다”며 전기자동차 산업으로의 올인을 선언했다. 반도체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의 순서로 흐름을 타던 자본이 이제는 전기자동차 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도 전기자동차 투자대열에 합류했다. 금융위기가 극에 달하던 무렵인 2008년 말.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중국의 전기자동차 회사인 BYD에 2억3천만 달러를 투입했다. 기업의 내재가치, 실질가치만을 투자지표로 삼았던 그가 자신의 신조까지 어겨가면서 사상 최초로 기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했는데, 이는 향후 중국이 전기자동차의 허브국이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워렌 버핏의 투자는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가속화되는 티핑 포인트와도 같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것은 자본의 흐름이 내연기관차량을 대체할 전기자동차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전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핵심인물까지 전기자동차에 합류하면서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디트로이트가 곤경에 처한 반면, 캘리포니아 지역에 포진한 전기자동차 기업들은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배터리와 모터 같은 핵심 부품을 만드는 전기자동차 부품회사들로도 이 같은 현상은 전기자동차로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진행 중이라는 자동차전문가들의 진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10월21일, 일본경제신문사는 자동차 및 경제전문기자 스물세 명을 동원해 전기자동차 관련 책자를 출간했다. ‘자동차신세기 승자의 조건’이라는 제하의 이 책의 소제목은 ‘석유에서 전기로의 대전환’이다. 전 세계 자동차산업의 현장조사와 아울러 각 분야의 리더들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결론은 석유에서 전기로의 전환을 리드하는 기업이 자동차산업의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에 밀어닥친 ‘100년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이미 진행 중이다. 전기자동차 산업은 기존의 자동차 산업처럼 특정 기업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전기자동차는 자동차는 물론 발전, 송전, 충전을 비롯해 IT, 통신, 방송, 컨텐츠 등 모든 산업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융·복합 산업의 총화이다.

 

내 것, 네 것이라는 구분이나 영역 지키기 보다는 그것들을 합쳐서 ‘우리의 것’이라는 고효율의 친환경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이미 목전에 닥친 패러다임 시프트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 수 없다. 오히려 도태와 몰락을 자초할 수도 있다.

 

크라이슬러를 기사회생 시켰던 미국 자동차산업의 풍운아 아이아코카의 “이제는 리드하거나 따라가야 할 때다. 그것이 아니라면 길을 비켜라!”라는 말을 행동에 옮겨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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