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은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 공간

좋은 작품 통해 예산지원 타당성 높여야

정은영사무관.

▲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

    정은영 사무관

 

왜 우리는 공공미술에 세금을 지불해야 하는가?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2009년 예술뉴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미술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나도 대한민국의 세금 내는 국민인 이상 예산이 지원됐다는 것은 내가 낸 세금이 사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낸 세금이 왜 이러한 프로젝트에 쓰여야 했을까? 이 방법론적 회의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답이 바로 국내 공공미술의 문화정책 방안이니까.

 

그렇다면 세금을 지불해야 하는 공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공공미술을 일컬을 때 도시나 공원에 서 있는 미술작품을 떠올린다. 즉 장소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폐쇄된 갤러리 실내가 아닌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그곳에 미감을 느낄 수 도록 작가의 손길이 들어가 의도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공공미술이다. 여기서 공간의 소유주가 국가냐, 지방자치단체냐, 민간이냐는 공공의 의미를 따지는 데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삼성병원 영안실 앞에 떨어지는 눈물을 형상화한 시간의 방향이라는 작품이나 광화문 흥국생명 앞에 세워진 해머든 사나이나 모두 공공미술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오고 가는 민간건물 앞에 작품을 세우는 데 우리는 세금을 지불해야 할까? 건물주가 건물 앞을 지나가는 대중들이 유쾌하게 미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만들면 되는 거지 내 금쪽같은 세금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게 인지상정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을 미학적으로 만들어 장소로서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 공공미술이 결합된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소통의 공간이 된다.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이 예술을 향유하고 소비한다. 삶의 질이 나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미술에 우리는 세금이라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경기 침체기 미술작가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최근 예술지원 정책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수요자와 공급자가 같이 만나는 형태의 작업에 대한 지원, 즉 ‘생활 속의 예술’에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민과 미술작가가 만나 예술체험과 창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공미술의 영역은 생활 속의 예술이라는 화두에 딱 들어맞는 프로젝트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예산지원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는 공공미술에 흔쾌히 세금을 쾌척하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집권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을까?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가 있을까? 눈에 띄는 곳은 제주도와 인천이다. 문예진흥기금을 관리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매년 180억~190억원이라는 기금을 16개 시도에 배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도별로 보면 많지 않은 돈이지만 동일한 규모의 지방비를 매칭해서 푼돈을 늘려 각 지역에서는 문화예술분야 발전을 위해 알뜰하게 살림을 산다. 이 예산을 가지고 공공미술 사업을 하는 곳이 바로 제주와 인천이다. 제주도는 지금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역 터미널 외관을 변형하는 프로젝트를 공공미술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낮은 재정자립도를 가진 시도에서 공공미술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중앙에서 마을미술프로젝트나 문예진흥기금 등으로 내려오고 지방비를 같은 규모로 내려오게 하는 사업들이 생기면 그나마 공공미술을 해볼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게 우리 지역 재정의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지역적 관심이 높아지게 되는 그 시점까지는 중앙에서 동 사업을 실시하고 지역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답이 나온다.

 

모델은 나왔다. 민들레 홀씨가 돼 지역 속으로!

하나의 정책이 시작되고 성과를 거두려면 하나의 모델이 필요하다. 얼렁뚤땅 몇 개 단체 뽑아서 예산 나눠줘야지 라는 생각으로 일하면 나눠진 돈이 사회적 독이 된다. 정책에도 신념과 소신이 담기고 거창하게 말하면 세상을 보는 철학이 담겨야 한다. 그 철학을 담을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는 형식이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금까지 두 번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아트 인 시티(art in city)와 마을미술 프로젝트 아트 인 시티는 작업의 공동체성, 주민참여적 맥락을 중시하는 사업이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도 전체적 차원에서 이러한 맥락을 계승했으나, 아트 인 시티(art in city)가 보여준 한계들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추진위원회 및 사무국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빚어낸 결과이다. 단순히 예술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사업이 그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갖는 한계선을 훌쩍 넘어서 버린 것일 수도 있다.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좌와 우를 떠나 지역 단위의 다양한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작업으로서 ‘공공미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었다. 공공미술에 드리운 이념적 라벨을 통쾌하게 벗겨 낸 것이다.

 

‘아트 인 시티’,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마을미술 프로젝트’ 등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작가들과 기획자들의 열정과 의지로 이렇게 진화해왔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전형들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수단은 확보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모델을 갖고 전국에 확산시키면 되는 것이다.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 가장 맞다. 그러나 지역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1~2년 정도 중앙에서 지역 상대로 다양한 주제로 사업을 몇 번 돌려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져 여론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지역 차원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예산지원 타당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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