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자의 심리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에코북

과소비사회는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됐는데 그동안 그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다. 그러한 비판들이 현재의 구조들을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후기 과소비사회가 도래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과소비사회를 대체할 믿을 만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현대 과소비사회는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발달할 것이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과소비사회를 살아가는 과소비자는 단순히 물질적인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보다 정신적 안락함과 내적 조화, 주관적인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마케팅(감정과 정서, 과거에 대한 향수, 신화와 유희, 시민 의식이나 환경, 동물적 본능)과 더불어 창조적 이미지인 예술과 아름다움, 스타일, 미학적 경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다. 이 책의 목적은 과소비사회의 기능과 과소비사회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과소비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는 데 있다.

 

 소비 문명은 역사적으로 3단계를 거치며 변화해왔다. 대중소비사회 제1단계는 1880년대 무렵부터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 단계는 부르주아만이 주체가 되는 불안전한 대중소비사회를 형성했으며, 대량생산이 확산되면서 대중 마케팅과 현대적 의미의 소비자가 생겨났다. 제2단계는 1950년대 무렵 시작돼 전후 30년에 걸쳐 자리를 잡았다. 이 단계는 놀라운 경제성장, 노동생산성 향상, 포드주의 경제 시스템의 확장을 그 특징으로 하며 ‘풍요로운 사회’와 동일시된다. 대중소비사회의 완벽한 모델로 등장한 제2단계는 소비수준이 향상되고 소비구조가 변했으며 내구재 구매가 거의 모든 계층에 널리 퍼진다. 풍요로운 사회는 ‘인위적인 수요 창조’, 조직적인 ‘낭비’, 끊임없는 유혹과 욕망을 자극하는 시대의 모습을 드러냈다, 소비사회는 대대적으로 신상품에 대한 열정과 상품 구매욕을 부추기고 소비 바이러스를 퍼트리며 물질적 가치에 치중하는 생활양식을 창조해냈다. 그렇게 제2단계는 미래의 방향을 ‘현재의 삶’과 즉흥적인 만족을 향한 시대로 변경해버렸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 단계 역시 막을 내렸다. 1970년대 말 이후 제3단계 소비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며 자유주의 사회의 소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모험에 새로운 미래가 시작됐다. 이 책은 대중소비사회 제3단계, 즉 과소비hyperconsommation사회의 현상과 주요 사안을 탐색해 ‘과소비사회의 종말’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고, 과소비사회 이후에 찾아올 다른 유형의 삶의 새로운 목표와 의미 그리고 전망을 발견함으로서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우리는 이제 겨우 과소비사회의 전반부에 와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도 경험과 생활양식의 상품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이제 곧 세계는 수백만 명의 중국인과 인도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되는 재화와 풍요로운 서비스의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할 것이다. 환경론자들의 끊임없는 경고도, 좀 더 검소한 새로운 소비 성향도 증폭되는 상품 세계의 주도권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소비를 향한 고속철도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점점 더 수명이 짧아지는 신상품들의 대대적인 등장도 제지하지 못할 것이다. 과소비사회의 소비는 실존적 시간과 관계가 깊다. 물질주의는 이미 지나갔다. 그 자리에 영혼을 위한 시장, 자아 존중과 균형을 추구하는 시장이 등장했다. 내면의 행복이야말로 오늘날 마케팅의 주요 대상이며 상업의 주요 분야가 되었다.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마케팅과 더불어 창조적 이미지인 예술과 아름다움, 스타일, 미학적 경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다. 쾌락주의와 안락함에 대한 열정이 국가주의에 대한 열정을 대신하고, 여가 생활이 혁명 정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즉 상품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 행복을 위한 지름길이 되었다.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 또한 새로운 신앙처럼 등장했으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대중의 열정과 이상이 됐다. 이러한 가치 기준에 지배받는 한 생태적, 경제적 재앙은 어느 정도 극복하겠지만 과소비사회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물질적이고 즉흥적인 기쁨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할 것이고,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요구되므로 과소비사회는 다른 유형의 문화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삶의 새로운 목표와 의미, 새로운 전망, 우선시해야 할 것들을 발견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방식의 혁명보다 가치의 혁명 또는 즉흥적인 기쁨을 재평가하는 문화적 변화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소비 인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치스런 이미지나 기세등등한 중심축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삶의 기쁨이다. 소비의 일시적인 천국 밖에서 정체성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유형의 교육과 일을 개발해야 한다. 역설적 행복의 시대는 해결책도 역설적이다. 지속적인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덜 불안하고 소비로 인한 만족감에 덜 집착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소비를 늘려야 한다’. 빈곤 퇴치뿐만 아니라 노인들을 돕고 시민들을 잘 보살피고 시간과 서비스를 더 적절히 사용하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새로운 경험들을 맛보기 위해 소비를 늘려야 한다. “소비의 진보 없이는 구원도 없다”는 말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 즉각적이고 온전한 만족감 대신 상품의 욕구만을 따른다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 정치적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소비문화를 재조정하고 소비와 생활 방식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하는 시대다.

 

*저자 소개

 

지은이: 질 리포베츠키(Gilles Lipovetsky)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이다. 그는 현재 그르노블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프랑스 정부의 사회분석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루이 알튀세르, 장 보드리야르, 미셸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 자크 데리다와 같은 프랑스 68혁명 세대를 알랭 르노, 뤽 페리와 함께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소장학자로서 현대사회와 대중문화에 관한 도발적인 사고와 글쓰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개인주의, 유행, 사치, 여성, 윤리, 소비와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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