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조업국 한국, 어획고에만 관심 기울여

남극보존 위한 국제 공조에 적극 참여해야

 

박지현
지구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수많은 생명체가 숨쉬는 ‘살아있는’ 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의 땅과 바다, 공기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적이 있다. 그 적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지구 전 생명체에 공공의 적인 인간은 생존을 넘어 이제는 ‘돈’을 위해 지구의 온갖 자원을 약탈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지구상 가장 가혹하고 척박하다는 남극의 바다로 나가 깊은 곳까지 그물을 내린다.

 

남극의 생물자원 약탈은 실상 남극이 처음 발견될 즈음인 18세기 말부터 시작됐다. 남극에서도 그나마 접근이 가장 용이한 남극 반도의 섬부터 물개잡이들이 들이닥쳤다. 유럽의 사냥꾼들은 중국에 팔기 위해 털가죽 물개를 닥치는 대로 잡아 가죽을 벗겨갔다. 단 몇 년 만에 발 디딜 틈 없이 많던 털가죽 물개들은 섬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러자 다음 사냥감은 바다표범이 됐다. 이도 거의 멸종되다시피 하자 고래가 그 다음 희생양이 됐다. 고래, 펭귄 등에 이어 이제 남극의 각종 어류 자원 남획이 시작됐고 생물 자원의 남획과 붕괴는 계속 이어졌다.

 

2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야만적인’ 자원 약탈은 어느 날 멈췄다. 자원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결과였다. 대신에 이제는 보다 문명화되고 세련된 방식의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생물 자원 관리의 시대에 들어섰다. 1982년 체결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이 그 요체다. 이제 남극해에서 고래와 물개를 제외하고(고래와 물개는 각각 특별 보호 협약으로 보호된다) 모든 해양생물자원은 ‘합리적 이용’을 위한 ‘보존’의 대상이 됐다. 합리적 이용에 앞서 보존을 강조할 만큼 그 동안 생물 자원 남획이 남긴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일부 어종은 아직도 이전 상태의 자원량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천만 년 이상 남극해의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 온 남극 바다 속 생태계는 다른 해역의 생태계와 달리 매우 단순하고 취약하기 때문이다. 현재 남극해에 서식하는 물고기 종은 대략 2백여 종으로 추산되며 각 종별 개체수도 다른 해역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 이처럼 종의 가짓수나 개별 종의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관리 없이 조업할 경우 생물종 남획과 붕괴는 매우 빠르고도 쉽게 발생한다.

 

지금 남극해에서 잡고 있는 수산 자원은 크릴, 남극빙어, 이빨고기, 오징어, 게 등이다. 우리나라는 이 중에서도 주로 크릴, 남극빙어, 이빨고기를 잡고 있다. 한국은 남빙양에서 2007년 어획량에 비례해 최고의 분담금을 내는 최대 조업국이었다. 또 작년 2008/2009 어기 때는 남극빙어로는 전체 2위(499톤), 이빨고기는 전체 4위(총 1226톤), 크릴은 2위로(41,131톤) 전체 13 개 조업국 중 상위권의 어획고를 올리고 있다. 이 정도면 가히 남극해의 최대 조업국이라 할 만하다. 특히 열악한 조업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어획고를 올리는 업계의 노력은 그들 말처럼 대단한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환경과 생물 보존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정부와 업계는 어획고와 수익 추구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남극해의 해양생물자원의 보존을 위한 노력이나 기여에는 매우 인색하다. 똑같이 크릴을 잡고 있는 최대 조업국인 노르웨이는 크릴 조업선에 과학관찰관 동승 의무화가 없을 때부터 관찰관을 태워, 자원 연구와 모니터링에 일정한 노력을 기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업계와 정부는 ‘비용’절감을 위해 자발적인 모니터링 노력은 아예 하지 않는다. 또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 회의에서는 새로 도입되는 각종 보존조처들에 대해 끝까지 반대한다.

 

작년 어기 때 전통적으로 크릴이 많이 잡히던 남극해의 한 해역(48.3해역)에서는 크릴이 싹 자취를 감췄다. 또 남극 반도의 빙하 80% 이상이 녹기 시작하고 있는데, 남극 대륙 아래의 로스 해(Ross sea) 주변 빙하는 매우 두꺼워지고 있다. 또 가끔 일부 지역에서 남극 펭귄들의 집단 떼죽음이 발견되기도 하고, 부화가 되지 않는 등 여러 징후들이 반복된다. 분명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남극과 남극해 주변 환경이 기후 변화와 인간 활동으로 결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남극과 남극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나아가 지구의 물리적 환경과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주의 깊게 관심을 갖고 실질적인 보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그 일환으로 시민환경연구소와 남극보호연합(ASOC)은 시급히 남극해의 일부 소해역들을 해양보호구역(MPA:Marine Protected Area)으로 설정해 연결하는 남극해의 MPA 네트워크를 완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보존, 과학 연구, 그 외 여러 보존 가치가 있는 해역을 지키고 꾸준히 모니터링 할 수 있다.

 

또한 크릴 조업과 같은 인간의 조업 활동이 펭귄이나 물개 등과 같은 포식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는 서식지에서 이뤄지지 않도록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크릴 조업의 99%는 이들 포식동물들이 새끼를 키우기 위해 먹이를 구하는 연안 해역에 집중돼 있다. 남극의 펭귄이 북극의 백곰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하겠는가.

 

남극과 남극해는 어느 한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인류 전체의 공동 유산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부 선진국들만이 남극과 남극해의 보존을 위해 앞장선다. 흡사 그들만이 남극과 남극해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국도 2기지를 건설하기로 확정한 남극의 강국으로서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지 않고 남극 보존을 위한 국제 공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환경 보존의 도덕적 당위성을 얻는 것 뿐만 아니라 향후 이것이 가져올 경제적 실익은 기대 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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