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정윤정 기자] 환경부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농어촌 노후 슬레이트지붕 제거사업의 시범사업에서 시공 업체에 대한 적격심사기준이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 지붕을 제거하는 공사에 석면해체제거업이 아닌 비계구조물해체업 즉 철거 공사 심사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비계구조물해체업의 공법은 브레이커, 압쇄기, 커팅기, 코어 기타 중장비 등을 이용해 깨거나 부수는 구조체 철거 작업인데 비해, 석면해체제거업은 석면해체제거구역 전체를 보양비닐 등으로 밀폐한 후 음압기로 내부의 음압을 유지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석면함유물질을 파손하지 않고 제거하는 작업으로 두 작업은 완전히 다른 공법이다.

 

석면을 제거할 때 작업장을 밀폐하는 이유는 머리카락의 5000분의 1정도 굵기의 미세한 석면 분진을 장기간 호흡기를 통해 흡수하면 석면폐, 폐암, 악성중피종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공사장 바깥으로 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며, 작업장의 공기압력 유지, 작업복의 폐기물 처리 등 공사 기준이 엄격하다.

 

석면해체 실적관리 미비해 심사할 수 없어

 

환경공단이 위탁해 올 한해 실시하는 시범사업은 슬레이트 제거 본사업의 추진체계를 확립하는 사업이다.

 

석면 슬레이트 제거 사업에 비계구조물해체업 심사기준을 적용함에 따라 석면해체 및 철거업을 동시에 보유한 업체들만이 입찰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는 현행법상 석면해체제거 작업은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해 장비·시설·인력 기준을 구비해 석면해체제거업을 등록한 사업자는 다른 면허에 구애받지 않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규정에도 어긋난다.

 

등록기준을 동시에 보유하도록 지정한 이유에 대해 환경공단은 “석면해체제거업은 전문공사가 아닌 용역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국가에서 인정하는 석면해체 실적관리가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지만, 비계구조물 공사는 실적관리를 하기 때문에 적격심사 기준을 비계구조물로 할 수 밖에 없어 비계구조물해체업을 함께 보유한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평겸.
▲환경공단 자원화개발팀의 김평겸 차장
환경공단 자원화개발팀의 김평겸 차장은 “비계구조물 업체보다 석면 전문 업체에 발주한다면 가격도 싸고 공사도 믿을 만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실적을 확인할 방법이 없고 조달청에서도 석면해체 공사를 할 때 적격심사 기준을 비계구조물로 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석면해체제거업은 음압기, 음압기록장치 등 장비가 한 대 이상만 있으면 어느 업체나 등록이 가능하다. 음압기(미세한 석면가루가 공사장 밖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실내 공기 압력을 낮추는 장비) 한 대로 음압(-0.508mmH2O이하)을 유지할 수 있는 면적은 150㎡(높이3m기준시)로 한 대만으로 150㎡ 이상의 면적을 해체·제거하거나 작업장이 나뉘어 있는 경우에는 음압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런데 현재 석면해체제거업의 등록기준이 너무나 간단해 입찰참여 목적으로 1대의 장비만 구매해 업종을 등록하고 계약을 수주해 저가에 공사를 하도급 업체에 입찰하는 관행이 팽배하다는 것이 석면해체제거업자들의 지적이다.

 

우리석면 황경욱 전무.
▲ ㈜우리석면의 황경욱 전무
석면해체제거 전문 업체인 ㈜우리석면 황경욱 전무는 “장비 한 대 이상만 있으면 등록이 가능한 상황에서 노후 슬레이트제거 사업에 석면해체제거 작업에 대한 경험이 없고 기술력이 부족한 비계구조물업체들이 낙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부수는 공사를 주로 하는 철거업자들이 석면 슬레이트를 제거하는 작업자 및 수 많은 농어촌 주민들이 석면 비산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효율적 공사 위해 석면 분리발주 반대

 

현재 석면은 용역으로 취급돼 공사 발주처로부터 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석면 전문 업체 관계자들은 이러한 현실에서 건설업자들이 저렴한 공사비를 부르는 하도급업자에게 공사를 발주하게 되고, 싼 값에 발주를 받은 석면 해체업자들은 더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석면이 전문공사로 분리 발주될 경우 국가적으로 공사 실적을 관리할 수 있어 부실공사를 하는 업체가 시공할 확률을 줄일 수는 있으나, 아직까지 국토부에서는 석면해체제거업을 전문공사로 분리하지 않고 용역으로 취급하고 있다.

 

국토부 건설경제과 관계자는 “건축물을 철거할 때 현재는 비계구조물철거업체에서 하도급을 주기 때문에 공사 기간 등을 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석면을 전문공사로 분리발주하게 되면 석면전문 업체가 공사를 주도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연장 돼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어 법으로 분리발주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환경공단에서는 고형화 된 슬레이트 지붕은 가루가 비산되지 않기 때문에 작업장을 밀폐할 필요가 없으며, 한여름에 실외에서 하는 슬레이트 지붕제거 사업에 대해서는 방진복을 벗게 하는 등 작업 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 석면추방네트워크의 최예용 위원장은 “고형화 된 슬레이트 자체에서는 석면이 비산되지 않지만, 현장에서 인부들이 슬레이트를 부수지 않고 안전하게 제거해 이중 포장하는지는 감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기존에 슬레이트 지붕제거 현장에서 편하게 공사하기 위해 석면을 뜯어 부수거나 심지어는 포크레인으로 지붕을 부수는 사례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들을 석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또한 방진복을 입는 것은 인부들을 석면으로부터 최대한 보호하려는 조치인데 여름철이라 덥다면 그 만큼 휴식시간을 주면 되는데 공사비를 줄여보겠다는 처사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 위원장은 “석면 분리발주가 이뤄지지 않아 헐값에 시공하고 실적관리도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 된 현실에 현장 감시감독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석면이 비산되지 않는다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국민들을 석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슬레이트 지붕 제거가 안전하게 이뤄지기 위해 제도개선과 철저한 감시감독이 필요한 시점이다.

yoonjung@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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