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원장 1
환경·경제 상생은 적절한 규제와 시장 메커니즘 활용

정책적 필요성보다 국민의 수용성을 먼저 고려해야

 

[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신임 이병욱 원장은 환경부 차관을 비롯해 산업계와 연구소, 대학교수 등을 두루 거쳤으며 관련 연구가 거의 없던 시절 탄생한 환경경영 1호 박사다. 해박한 지식과 함께 풍부한 경험을 국책연구원 운영에 어떻게 풀어낼지 이 원장을 만나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이병욱 원장을 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말을 잘한다’라는 것이다. 워낙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기 때문인지 환경과 관련된 어떠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해도 거침이 없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환경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신재생에너지 하면 흔히들 ‘친환경 에너지’를 생각하는데 산림을 훼손하면서 건설하는 신재생에너지가 과연 친환경이 맞는지를 따져보려면 먼저 환경적 가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석면, 구제역 등의 문제가 터졌을 때 정부가 대책을 발표해도 못 믿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신뢰가 한 번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문제에 대해 통계와 근거를 가지고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프로세스가 중요한데 과거에는 문제가 터지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책을 만들어서 공급하고 피해를 본 사람은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반복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연구라는 것은 항상 가정과 절차상의 논리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서로 다른 해석을 하게 되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일부 연구기관, 공공기관에서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결과를 갖고 국민에게 다가가면서 자초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그런 일이 없도록 연구자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책을 바라봐야 한다. 정책 공급자 입장에서 ‘골치 아프니까 덮고 넘어가자’ 이러면 불신이 쌓여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믿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낭비 부추기는 전기·수도요금

 

환경과 개발, 어떻게 보면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인 가치일 수도 있지만 환경경영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생의 길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환경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며 여기에 적절한 규제와 시장 메커니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녹색성장을 주장하는 나라이면서도 가장 후진적인 가격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에너지, 특히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말도 안 되는 체계이며 낭비를 부추기는 체계”라며 “환경과 경제의 상생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규정지었다. 아울러 그는 “그러면 서민부담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이 당연히 나오는데, 그것은 복지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지, 경제적 메커니즘에서 다뤄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이를 뒤섞어서 논의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규제가 적절할 때 경제와 환경이 상생할 수 있는데, 수출지원이라는 명목하에 대기업도 전기요금 인하 혜택을 받는 구조에서 과연 기업이 자발적으로 경제와 환경의 상생을 추구하겠느냐는 것이다. 녹색성장이라는 주제를 발굴해서 선정한 것까지는 잘했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미비한 점이 발생했으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기·수도요금 체계라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바로 잡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방향 자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이미 실증적인 사례도 나오고 있지만 환경과 경제의 상생이 현실에서 통용되려면 시장경제의 핵심인 가격 메커니즘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이제 탄소세, 에너지세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사회가치평가 과정에서 환경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충분한지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시장에서 환경적 가치를 넣었을 때 진정한 에너지 가격, 수도 가격이 정해지지 않겠는가?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프리라이더(free rider, 무임승차자)가 과연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KEI만의 연구로 부족하다면 관련 부처, 연구소와 함께 하기 위한 논의를 이미 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9월 그린코리아.
▲지난 9월 열린 ‘GREEN KOREA 2011’에서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병욱 원장

“수변지역 난개발은 안 돼”

 

한편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수변지역 난개발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원장도 마찬가지 우려를 하는 듯싶다. 그는 “지자체들이 수변공간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을 보면 미니골프장, 행사장, 야영장 등을 만들자고 한다”며 “지역에 도움이 되고자 활용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4대강을 정비한 애초의 목적이 홍수 대비와 수질 개선 등이 있는데 어떤 식으로 이용하던 사람들의 느낌에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며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국민이 받아들이기에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느낌을 받는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에 대한 수용성이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실제 지역에 사는 사람이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 느껴야지, 정책 결정자들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싫다는데 어쩔 것인가? 어쩌면 이것이 지금껏 정책결정에서 실패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시간을 가지고 지자체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수자원공사가 단기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개발사업을 대규모로 벌이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낙동강 주변이 부각되면서 한강처럼 난개발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크다. 수변구역 관리에는 수준 높은 ‘툴’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환경부 차관 시절에도 관련 연구와 대책을 지시했지만 막상 KEI에 와서 점검해보니 진행된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는 “4대강 사업이 ‘옳다 그르다’ 논의는 더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발전시키고 부작용을 없애야 하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다. KEI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고 하지만 정부 부처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수변구역 개발은 기본적으로 또 다른 난개발을 불러와서는 안 되며 환경적 가치를 충분히 반영할 것, 그리고 국민의 수용성, 이해도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고 ‘나중에 봐라, 이게 얼마나 좋은 건데’라는 식의 사업 추진은 위험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010년 밥퍼행사.
▲지난 2010년 환경부 차관 시절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활동인 ‘밥퍼’에 참여한 이병욱 원장

“직업만 열댓 번은 바꿨다”

 

아울러 COP18(18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의 우리나라 유치가 가능할 것인지, 유치한다면 국익에 도움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이 원장은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조만간 결론이 날 문제를 가지고 미리 넘겨짚어서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이 행사를 이벤트로 봐서는 곤란하며 국제 정치·경제·환경적 관점에서 복잡한 주제다”라고 말했다.

 

그간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은 것이 어떠한 도움이 됐을까? 이 원장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직업을 바꾼 것이 10개가 넘더라”라고 말했다. 한우물만 파기에도 벅찰 것 같지만 이 원장은 여러 가지 경험이 지금에 와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직업을 바꾼 것이 지나친 욕심으로 비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본의가 아니었다. M&A 돼서 직장이 없어지거나 집안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오너와 갈등 때문에 쫓겨나기도 하고…(웃음). 뭐 이런 경우지 스스로 싫어서 떠난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10여년 전부터 KEI에 오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여러 가지 경험 없이 그때 원장으로 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라며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 이해당사자)의 허브 역할을 하려면 그들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러 직업에서 쌓은 경험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환기협 감사패.
▲지난 2010년 환경기술혁신기업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던 당시 이병욱 환경부 차관

연구소마다 ‘녹색’ 타령만

 

국책연구소 연구자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가 기존 연구가 정부 입김에 휘둘리는 경우다. 차라리 새로운 연구과제를 주면 나은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연구가 변질될 때 그들은 회의를 느낀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 원장 역시 동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번 국회 예산심의를 가서도 느끼는 점인데, 지경부나 국토부가 언제부터 녹색을 했다고 모든 사업에 ‘녹색’이라는 이름을 붙이나?”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예산심의에서는 녹색 관련 예산은 여·야 할 것 없이 다 통과시켰지만 대통령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국회에서 ‘녹색’이 붙은 예산을 거의 다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관련이 있건 없건 각종 연구소에서는 아직도 ‘녹색’을 붙들고 있다.

 

정부, 공무원은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던 상관 없이 업무를 이어나가야 한다. 이는 국책연구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권과 정부의 관계가 잘못 설정되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면서 단기성 프로젝트만 남발해 결국 욕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엄청나게 많은 보고서에 ‘녹색’이 붙었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녹색성장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나 보고서가 없다”며 “연구자 말을 들어주던지, 잘 모르면 물어봐야 하는데 자기가 생각하는 녹색을 가지고 연구지시를 내리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언제 이렇게 ‘찐’하게 ‘녹색’을 해보겠는가 싶다. 환경이라는 것은 ‘만만한 주제가 아니구나, 고민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칠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다”라고 말했다. KEI의 비전을 ‘녹색성장’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 바꾼 것 역시 국민을 설득시키기 위한 용어와 전문가들이 연구해야 할 주제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녹색을 분칠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내세우고 기본방향을 지키면서 콘텐츠로 승부해야지 무늬만 녹색이면 뭐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자율성 보장, 연구의 편식만은 막겠다”

 

이병욱 원장 2
그렇다면 앞으로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어떻게 바뀔까? 연구원의 가장 큰 관심사가 바로 이 문제다. 그에 대해 이 원장은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구원장의 역할에 대해 ‘편식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원들이 자기 편하다고 지금까지 하던 연구를 제목만 바꿔서 몇 년을 계속하면 엉뚱한 연구결과만 내놓게 된다”며 “시대의 흐름과 연구주제의 적합성을 객관적으로 코치하고 필요하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물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지만 각자 자기 좋아하는 연구만 하면서 정작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라며 “국책연구원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 만큼 책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 원장은 창조적인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농촌 저소득층 노인들의 난방대책을 예로 들며 “정부가 시설을 짓고 자금을 지원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 차라리 우드펠릿 기계를 설치해서 한번 인프라를 구축하면 별다른 운영비가 필요 없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환경에서도 인문·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눈만 내리면 난리인데 왜 눈 치우는 로봇을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정부 탓만 하는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주체별로 창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담=김익수 편집대표·정리=김경태 기자>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