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조은아 기자] 환경원로모임인 ‘일사회(逸士會)’는 불모지였던 1970~1980년대 환경분야에서 국회 헌법을 개정하고 환경정책을 이끌어가는 등 현재 환경분야의 기틀을 만든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일사회는 한국 환경야사 ‘그 세월의 뒷모습’을 발행하고 환경사의 뒷이야기를 회고했다. 집진장치 전문기업이자 이 책의 발행을 맡은 ㈜KC코트렐의 이달우 회장을 만났다. <편집자주>

 

일사회, 환경야사 ‘그 세월의 뒷모습’ 집필해

1970년대 회고 통해 환경역사 기록에 남겨

 

이달우회장02.
▲ ㈜KC코트렐 이달우 회장

우리가 환경을 이야기할 때는 당연히 환경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가 없는 미래가 있을까. 한국 환경사를 논할 때 환경보호라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일생을 보낸 환경원로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KC코트렐의 이달우 회장(82)은 환경기업인으로서 유일하게 가장 긴 시간을 기술자로 보낸 대한민국 환경산업의 산증인이다.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가 꺼낸 얘기는 바로 ‘공부’였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공부야.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그동안 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것,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어. 최근 책을 발행하면서도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 여전히 배울 것이 참 많아. 재미있는 일이지”

 

과거 한국환경사 통해 환경보호 중요성 강조

 

일사회 회원인 이 회장은 최근 발행된 한국 환경야사 ‘그 세월의 뒷모습(펴낸 곳 홍문관)’ 집필에 참여했다. 이 책은 1970년대 “공해는 있어도 피해는 없다”라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내세운 시대를 겪은 일사회 회원 12인의 회고록으로, 과거 한국의 환경역사를 통해 환경오염의 위해성과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내는 것은 물론 나 혼자만의 결정은 아니었어. 오래전부터 일사회 내에서 한국의 환경야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오랜 과정을 거쳐 발행하게 된 거지. 우리나라 환경이 궤도에 오르기 이전의 이야기, 즉 역사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이 당시의 이야기는 정식적인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우리 같은 원로들이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한국의 환경 초기 역사는 망각되는 거야. 이 책이 발행되고 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 끝낸 느낌이랄까. 이런 것을 기록해야 하는 것도 환경인으로서의 책임인 거지”

 

그세월의뒷모습.

▲ 이달우 회장을 비롯한 환경원로모임

‘일사회’ 회원 12인은 최근 한국 환경야

사 ‘그 세월의 뒷모습’을 발행하고 과거

한국 환경역사 회고를 통해 환경오염의

위해성과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

다.

학술적인 역사적 서술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정부가 구체적으로 환경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980년 환경청을 개청하기 이전까지의 국내 환경문제 연구와 활동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으며, 노융희, 박노경, 차철환, 김정현, 이달우, 손동헌, 노재식, 이승무, 박재주, 신광순, 윤명조, 박창근 등 12명의 원로가 집필했다.

 

이 회장도 ㈜KC코트렐을 통해 한국의 산업기술을 회고했다. ㈜KC코트렐은 공식적으로 1973년에 설립됐지만 실제로는 10년 전인 1963년부터 이미 대기오염 방제기술사업을 시작해 올해로 48년을 맞았다. 당시 아무도 관심에 두지 않았던 대기오염의 환경적 유해요인을 제어하거나 환경피해를 최소화하는 영역에서 사업을 시작해 나간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가 환경산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63년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외 진출 성공의 비결은 ‘기술경쟁력’

 

“내가 공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환경산업을 시작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원래 교수의 길을 가려 했다가 우연히 한국전력 화천발전소에 입사하게 된 거야. 내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지. 그때 일을 하면서 깨달았어. 시대의 기술자는 학문을 통해 박사가 돼 지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술자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미 50년이 훌쩍 넘었네”

 

현재 ㈜KC코트렐의 전신인 한국코트렐이 본격적인 환경기업의 궤도에 오른 것은 1979년 ‘한국전력 보령화력발전소’의 전기집진지를 수주하면서부터이다.

 

“국제입찰을 통해 진행된 보령화력발전소 건설에 한국기업으로 참여해 수주에 성공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가격경쟁력이었어. 입찰가를 가장 낮게 책정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프로젝트 입찰에 성공해도 적자를 면치 못할 거라고 했어. 설계비만 해도 총 비용의 10% 이상 드는데 어떻게 비용을 감당할 거냐고 했거든. 뭐가 문제야. 내가 직접 설계를 하는데. 그때 내가 설계한 그 기계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지”

 

이후 대만 전력공사가 발주한 ‘신타 발전소’와 ‘타린발전소’의 전기집진기를 수주, 성공적으로 완공함으로써 우리나라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후 국가적으로 삶의 질 향상 요구와 환경규제의 강화 등으로 환경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정부는 환경적 규제를 적극적으로 나서고, 사회적으로는 신기술과 친환경 제품에 대한 요구가 커지게 됐다. 그에 발맞춰 KC코트렐도 해외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해 미국, 중국, 인도, 베트남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성공의 비결? 그들보다 기술력에서 앞서야 해. 아무리 가격이 싸면 뭐해, 기술이 앞서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계속해서 개발하고 연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그건 환경뿐만이 아니야.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지. 예전에는 국가에서 지원도 해주고 했지만 이제는 영역이 세계로 확장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잖아. 그런 경쟁에서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건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운은 1%에 불과해. 나머지 99%는 노력을 통한 기술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해”

 

노력한 만큼 성공을 거둔다는 불변의 정석이 이 회장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지난 2006년에는 서울대 공대 개교 60주년을 맞아 한국공학한림원과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또한 최근 환경기술진흥원은 KC코트렐의 주 제품인 집진, 탈황 및 탈진기술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정도 되면 환경분야에서 좀 더 영역을 넓혀 다른 분야로의 진출도 노려봄 직한데, 그의 대답은 ‘N0’였다.

 

엔지니어 60_코트렐제공.

▲ 이달우 회장은 지난 2006년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으로 선정되는 등 환경기술인으로서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진=(주)KC코트렐>


25년간 심은 나무, 사립수목원 ‘상효원’으로 탄생

 

“외길을 가는 것, 그것만은 고수하고 싶어. 물론 환경산업 이외의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하지만 그러진 않을 거야. 그건 내 신조이기도 하고, 내가 이 분야에서 50년을 버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거든”

 

이달우 회장01.

▲ 팔순을 훌쩍 넘긴 이달우 회장은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며 늘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외길을 고수하는 그가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나무심기’. 평생 공학도로서, 환경기술자로서 종사해 온 그가 누려온 유일한 취미다. 취미도 그의 강직한 성격답게 25년째 심취해있다.

 

“원래 따뜻한 제주도에 땅을 얻어 집을 짓고 조용한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25년간 심다보니 내가 보기엔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곳이 돼버린 거야. 이런 곳을 사용(私用)으로 하기엔 너무 아깝잖아”

 

제주도의 작은 구릉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8만여평에 이르렀고, 제주도에 자생하는 식물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수목을 식재해 내년 5월 ‘상효원(上孝園)’이란 이름의 수목원 개장을 앞두고 있다. 자연 그대로 공원으로 남겨 후손에게 아름다움과 가치를 체험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만든 이 회장의 또 다른 열정의 모습인 것이다. 과연 이 회장에게 ‘환경’이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이 요즘 ‘환경, 환경’하며 많이 떠들고 있는데 실제 환경은 우리 일상이야. 이렇게 나서서 강조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특별하다고 외치지 않아도 인간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자 자연스러운 거지. 옛날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사람이 평범하게 지킬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 특별할 게 하나도 없어”

 

지금까지 환경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는 이달우 회장.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왔다는 그를 통해 우리는 우리나라 환경의 미래를 본다.

 

lisian@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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