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1등 기업이 개척한 길을 벤치마킹이라는 미명 하에 흉내내도

 본질적으로 1등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넘버원 기업은 기존 시장 및 강점의 수성과 그 외 영역으로의 혁신 사이에서 주저할 수 있다. 조직 이론 분야의 대가인 제임스 마치(James March) 교수가 말한 ‘성공의 함정(Success Trap)’ 때문이다. 소비자 요구나 외부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이전까지의 성공방정식과 핵심 역량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다가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놓고도 단기적 이윤을 위해 주력인 필름사업에 집착하다가 결국 후발 기업에 밀려 시장지배력을 상실한 전형적인 사례다.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아니지만, 농심도 이전까지의 강점인 빨간 국물과 소고기 육수를 지키다가 결국 꼬꼬면에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에 빠진 사례다. 신라면 출시 후 25년 동안 한국 라면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오던 농심은 자사의 라면 맛에 길든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웰빙 트렌드에 맞춰 라면도 빨간 소고기 육수를 계속 유지한 영양이 풍부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신라면 블랙’을 내놓게 된다. 하지만 꼬꼬면의 하얀 국물 열풍이 쉽게 잦아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라면 카테고리는 여전히 서민용 먹거리지, 영양식이 아니었다. 단지 다양한 색깔과 맛을 지닌 새로운 라면을 원했을 뿐이다.

 

소비자 측면의 니즈, 인식, 행동의 변화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넘버원 기업은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무시하거나 알고도 발 빠른 대응에 주저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 큰 위기를 자초하거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차별화’를 다시 생각한다

 

디지털카메라.

▲코닥은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만들고서도 필름사업에 주력하다

 시장지배력을 상실했다.

지금까지 넘버원이 유지된 데는 후발 주자들이 넘버원을 따라하기에 급급했던 것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라면의 경우, 매운맛과 적절한 면발 굵기를 가진 신라면에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내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목표였을 정도다. 아무리 잘한들 신라면 아류작이 될 수밖에 없다. 1등 기업이 처음 개척한 길을 벤처마킹이란 미명 하에 열심히 노력해봐야 초기 시행착오를 줄여주며 모방과 개선의 효과는 달성할지 몰라도 1등을 넘어서기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후발기업들이 너도나도 대세를 추종하면 경쟁이 급격히 증가하고, 결국 질적 경쟁보다는 생산성이나 효율성 중심의 양적 경쟁으로 치환돼 자원이나 브랜드 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는 넘버원 기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지금껏 후발주자들은 단기적 성과와 생존을 위해 넘버원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해 온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1등 기업도 위기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맹목적인 추종은 후발주자들의 생존마저 어렵게 할 수 있다. 수많은 제품이 넘쳐나는 과잉 공급 시대에 또 하나의 유사 제품을 뒤따라내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은 지금까지의 경쟁 방식과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독특한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

 

다이슨.

▲놀라운 반응에 소비자 구매 행동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꿨다면 진정한 차별화가 이뤄진

것이다.<날개 없는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

 사진=다이슨 홈페이지>

전략경영의 석학인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전략은 다름에 관한 것(Competitive strategy is about being different)’임을 강조한 바 있다.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면 독특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의도적으로 남과 다른 활동을 선택하는 게 전략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르면 후발주자들의 경쟁 방식도 넘버원과의 유사성보다는 다름을 지향해야 한다. 다름을 추구하는 차별화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인 ‘에어 멀티플라이어’를 처음 접했을 때 소비자들의 반응은 ‘와우! 세상에 이런 것도 있네!’라는 감탄사였다. 놀라운 반응에 이어 소비자의 구매 행동이나 더 나아가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꿨다면 넘버원을 뒤흔들 수 있는 진정한 차별화가 이뤄진 셈이다.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나오기 전후를 비교해보면 의미 있는 차별화가 어떤 것인지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넘버원에 도전하는 진정한 차별화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차별화의 길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을 통해 남과 달라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자기만의 강점을 프레임으로 하는 차별적인 시도로, ‘넘버원 따라하기’가 아니라 ‘넘버원 따돌리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경쟁 요소, 경쟁 방향, 경쟁 영역, 경쟁 시기에 있어서 넘버원과는 철저히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자신만이 제공할 수 있는 핵심적 가치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주면서 동시에 넘버원 기업은 ‘성공의 함정’ 때문에 진퇴양난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다다익선’만이 정답은 아니다

 

햄버거.

▲인앤아웃 버거는 맥도날드의 정반대 방향으로

차별화를 시도해 충성도 높은 고객들의 입소문에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경쟁 요소의 차별화이다. 이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다. 흔히 기존 가치에 약간 더하거나 개선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차별화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넘버원과 비교하여 자신의 약점 요소들을 보완하여 다양한 가치들을 각각 평균적 수준으로 제공하려고 애쓴다. 그나마 있던 강점도 밋밋해지고 평준화된 여러 가치들의 집합으로 차별화는 거꾸로 빛을 잃어갈 뿐이다. 이제는 경쟁 요소들에 대한 다른 셈법이 필요하다. 꼭 더하고 많이 주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오히려 부수적인 가치들의 제거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강점 가치에 집중하여 극대화함으로써 넘버원과의 차별화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 체인점으로 뽑힌 인앤아웃 버거(In-N-Out Burger)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맥도날드를 제치고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한 2년 연속 패스트푸드 체인점 소비자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맥도날드가 빠르고 간편하게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인앤아웃 버거는 ‘신선한 맛’을 최우선으로 유지하는 게 차별화 성공의 비결이다.

 

그 대신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필요 없거나 포기하는 것들이 많다. 매장에는 얼린 재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냉동고나 전자레인지도 없다. 직영 육가공 공장과 식자재 배급소를 운영하면서 식재료의 품질을 직접 관리한다. 직영 배급소 반경 8백Km 내에만 매장 오픈을 허락하다 보니, 1948년 1호점 개점 이후 지금도 미국 서부 4개 주에 30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가 전세계적으로 3만 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사업 확장에 열을 올려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질적 경쟁을 고수하다 보니 메뉴판도 단순하다. 햄버거 세 종류에, 프렌치프라이, 밀크쉐이크, 소다 음료가 전부인 메뉴는 창업이래 변함이 없다. 주문과 동시에 요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햄버거를 먹기 위해선 평균 12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빠르지 않은 패스트푸드점이지만, 질 좋고 맛 좋은 햄버거에 열광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의 입소문에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비공개 기업으로 2010년 연간 매출은 맥도날드의 1%에 불과하지만, 순이익률은 2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LG경제연구소, 정리=김경태 기자>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