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도 식품 기능성 강조 ··· 선택기준 왜곡
음식은 생리 효능이 아닌 문화의 산물

 

식품과 의약품은 모두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식품은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의약품은 생리작용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식품은 저독성・비특이성이지만, 의약품은 고독성・특이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식품과 의약품이 항상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식품 중에는 의약품과 비슷한 생리효능을 가진 것도 있고 의약품 중에도 생리효능 이외에 영양 공급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도 있다.

 

이덕환8
식이요법은 생리효능을 가진 식품을 이용해서 건강을 지키려는 방법으로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의 식이요법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기대하는 효능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식이요법에 사용하는 천연물의 재료가 되는 식물이나 동물의 생태적 특징이나 개인의 제한적인 경험에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효능을 기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다처(一夫多妻)의 물개는 남성의 정력을 상징하고, 석류처럼 많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식물은 여성의 다산(多産)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식품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일반화되면서 식이요법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재료의 생태적 특성이나 제한적인 경험만으로는 생리효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근거가 빈약한 주장에 현혹돼 소중한 건강과 재산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는 그런 유혹을 외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전통이나 비법(秘法)을 앞세운 엉터리 식이요법이 크게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식이요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식이요법의 필요성과 가치가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삶의 질이 개선되고, 건강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면서 식이요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적절하고 합리적인 식이요법이 건강 유지, 특히 질병의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잘못된 식사 습관이 비만, 당뇨,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현대 과학의 발전이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학을 앞세운 식이요법이 과연 상징성을 앞세운 전통적 식이요법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언론을 통해서 전해지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그렇다. 겉으로는 ‘과학’을 강조하고, 과학적 용어와 표현을 동원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재료의 생태적 상징성을 근거로 했던 과거의 전통적인 주장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경우도 많다. 등푸른 생선의 ‘불포화 지방’과 ‘오메가-3’, 갑자가 유행하게 된 흑미(黑米)와 검은콩의 ‘항산화 성분’ 등이 그렇다. 물개의 일부다처와 석류의 수많은 열매가 낯선 과학 용어로 대체된 것을 빼고 나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늘날 우리 언론이 식품을 소개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획일화・정형화 돼 있다. 우선 지역의 특산물은 모두 ‘임금님이 드시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표현은 굶주림이 일상적이었던 시절, 식품이 신분차별의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설명이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그런 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좋은 식품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식품의 소개에서도 역사와 과학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요즘의 식품 소개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화학 성분과 그 기능에 대한 소개다. 두부에는 ‘레시틴’이 들어있고, 바지락에는 ‘베타인’이 풍부하고, 양파에는 ‘케르시틴’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런 성분들을 소개하는 이유도 황당하다. 영양학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레시틴은 ‘어린이의 두뇌 발육에 좋고’, ‘베타인은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시켜 주고’, 케르시틴은 ‘체내의 니코틴 성분을 배출시켜 준다’는 것이다. 모두가 공영방송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최근 소개된 내용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가 있을 수 없는 황당한 내용이다.

 

식품과학 전문가들의 정치적 민감성도 문제가 된다. 주곡(主穀)인 쌀 생산이 부족했던 1970년대까지는 녹말이 대부분인 쌀은 영양학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었다. 혼식과 분식은 쌀의 영양학적 단점을 보완해주는 현명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있다. 이제 쌀은 비만과 알레르기를 해결해주는 ‘기적의 식품’이라는 것이다. 쌀의 영양학적 가치가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식품의 과학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식품의 기능성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문화가 과학이나 기능성에 의해 발전해온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전통 음식 중에는 현대 과학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도 많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소금의 부작용을 고려하면 간장, 된장, 김치는 절대 좋은 식품이라고 하기 어렵다. 식품에서도 생리효능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생리효능이 식품을 소개하는 핵심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음식은 문화의 산물이고, 식품의 소개에서도 그런 사실이 강조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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