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과장
▲서울혜화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김종길 과장

김동리 작가의 단편소설 ‘아들 삼형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에이 도눅년같이!’ 큰아들은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고는 뒤꼍으로 끌고 갔다. ‘아야야!’ 큰아들은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은 채 발길로 질러 쓰러뜨리고는 눈이 시뻘개져서…


과거 1960~1970년대 흔히 목격되던 삶의 단상이다. 이는 매체를 통해 간혹 접할 수 있는 사례이다.


과거 가정폭력은 애써 무관심하려 했던 대상이다. 또한 가정폭력 당사자들도 ‘내 가정을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 ‘수치스럽게 남한테 어떻게 알리냐?’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 문제이니 이웃이나 사회에서 개입할 게 아니다’라고 외면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임무로 하는 경찰관도 예외가 아니다.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흥분이 가라앉으면 처벌의사를 번복할테니 사건처리는 천천히 하자’며 적극적 개입을 꺼렸다. 심지어 가해자(통상 남편)에게 전화해 ‘가정폭력, 집안일이니 두분이 해결하세요’라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우리사회가 방관하던 사이 가정폭력은 날로 늘어 그 폐해는 커졌다.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4년에 비해 약 9%(2004년 44.6%, 2010년 53.8% 증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아내에 대한 폭력에 한정해 가정폭력의 사회적 비용을 연간 2조 821억원으로 추정했다(가정폭력 예방 및 치료정책의 실효성 제고방안,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도 한 해 가정폭력은 전국적으로 약 9천여건이 발생했다. 가정폭력으로 연간 2조원이 넘는 사회비용이 소모되고 있고 시간당 한 건의 가정폭력이 발생해 심각성이 우려된다.


선진 각국은 가정을 건강한 사회 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인식해 가정폭력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미국의 경우 사회복지사, 의료종사자 및 교사 등이 업무수행 중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경우 사법기관에 신고토록 법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경찰과 법원의 긴급보호 명령(Emergency protective orders) 및 자치단체의 상담·지원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들이 치밀하게 마련돼 있다.

 

나아가 가정폭력도 범죄라는 사회인식이 강하게 형성돼 있어 이웃의 사소한 말다툼도 경찰에 신고하는 문화로 정착돼 있다.


최근에야 우리사회도 가정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듯하다. 경찰관의 가정폭력 현장출입 조사권이 신설됐다. 출동한 경찰관은 응급조치 의무를 갖게 된다. 정부차원의 여성긴급상담전화(☏1366)가 설치됐고 한국여성상담센터 등 다양한 민간차원의 상담센터도 마련됐다.


정부는 가정폭력을 4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근절 노력에 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인식 변화, 즉 가정폭력이 더 이상 가정 속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끊고 가야할 범죄라고 인식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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