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 지난 2013년 10월 24일 오전 한 아이가 반신욕 중 사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자료 수집과 부검을 통해 타살을 의심했고 29일 장례식 후 계모 박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여덟 살 소녀가 소풍날 계모에게 맞아 숨진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30일 울주경찰서는 피해자인 이양이 옆구리 쪽에 당한 폭행으로 양쪽 갈비뼈 16개가 골절됐으며 이때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른 것이 결정적인 사인이었다고 부검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혐의를 상해치사에서 학대치사, 상습폭행, 아동학대 등으로 변경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가해자 박씨의 가중처벌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탄원서가 제출됐고 시위가 이어졌다. 인터넷 카페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이 개설 이후 온·오프라인을 통해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서명활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친모인 심씨는 울산지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아이는 유치원 시절부터 박씨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고 이는 친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갈비뼈 16대 부러진 채 숨져

울산지방검찰청은 박씨에게 살인죄 등을 적용해 구속기소했고 2014년 1월 중순 현재까지 두 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아울러 울주경찰서는 박씨의 이양에 대한 학대를 방임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이양의 친부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도 이 문제에 나서 지난해 12월31일 국회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과 ‘아동복지법 일부개정안’이 의결됐다.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6개 민간단체와 아동복지·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 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월24일 국회에서 중간보고회를 열고 허술한 아동보호 체계와 관계기관의 소극적인 대응이 아동학대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박씨에게 학대를 당했으며 2011년에는 교사가 이양의 친부에게 전화를 걸어 친부가 박 씨의 체벌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후에도 발바닥, 배와 등에 심한 멍자국을 발견한 교사는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 사실을 신고했고 가해자 박씨는 아동학대 판정과 함께 ‘원가정 보호 및 지속관찰’ 조치를 받았다.

2012년 울산 울주로 이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교사들은 “이 양이 모범생이었고 박 씨는 학급 어머니회장을 맡는 등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양은 2012년 5월21일 대퇴부 골절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다음날 수술까지 받았다. 당시 119구급대는 박씨의 신고를 받고 집으로 출동했고 박 씨는 응급실에서 사고 이유를 “아이가 학원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10월31일 이 양은 집에서 양쪽 손목과 손, 양쪽 발목과 발을 데이는 2도 화상을 입어 12일간 결석했다. 박씨는 샤워하다가 화상을 입은 것으로 주변에 설명했지만 다시 등교했을 때 아이는 흰 면장갑을 끼고 왔다. 박 씨는 교사에게 ‘가려워서 긁거나 햇빛을 보면 흉터가 생길 수 있으니 장갑을 벗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폭력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해서 학대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수년간 계속된 공포의 날들 


2013년에도 한 차례 담임교사가 이 양의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발견했을 때 이 양과 박 씨는 추석 때 공원에서 놀다가 다쳤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1·2학년 동안 학교 교사와 학원장, 주변 이웃, 이 양이 다닌 병원 관계자들은 모두 박 씨의 이 양에 대한 학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한 달에 한 명씩의 아이들이 아동학대로 사망했다. 특히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잠깐 끓어올랐다가 흥분이 가라않으면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묻히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에 여덟살 어린 아이가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아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더 이상 아동학대로 희생되지 않도록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서현이와 같은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다각적인 제도개선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울주 아동학대 사건 진상조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다양한 개선사항이 있었다. 개선사항 중 많은 부분은 작년 12월31일 통과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반영됐다.

그러나 특례법에 근거해 국가가 아동보호사업을 수행하려해도 2014년에 특례법에 근거해 책정된 예산은 한 푼도 없다.

2014년 예산심의에서 아동보호예산으로 436억을 증액 요청했으나 전액 삭감된 것이다. 특례법은 통과됐지만 2014년에도 이양이 죽었던 때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아동보호체계가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울주 아동학대 사망 사고 이후 민심은 들끓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특례법은 제정됐지만

예산은 한 푼도 없다.

 

아동학대는 묵과는 우리 사회 수치

중간보고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는 “아동학대의 근절 대책은 처벌보다 예방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처벌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대는 폭력사건과 달리 학대행위자가 가해자이면서 보호자이기 때문에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모든 사례를 원가정에서 분리할 수도 없고 분리해서도 안 된다”라며 “단기간 분리됐다 하더라도 가정상황이 나아지면 아동을 원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완전히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처벌중심이 아닌 예방 중심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인프라를 구축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가능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학대 근절도 시급하다. 앞서 이양은 아동학대 판정을 받았지만 잦은 이사로 사례이관 과정에서 재학대로 사망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아동학대 행위자의 처벌과 교육을 통해 그들을 철저히 교정하고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되면 아동주변의 신고의무자들을 역추적 방식으로 찾아내어 경고하고 이후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000~3000여 명의 만 18세 이하 아동이 사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18세 이하 모든 아동사망은 사망사례조사팀(child death review)의 점검을 통과하도록 해 학대로 인한 사망은 반드시 발견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아동학대는 저항할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이 절대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아동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폭력”이라며 “이를 묵과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치이자 또 다른 사건이 잇따르게 방치하는 암묵적 방조”라고 밝혔다.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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