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바이러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1차 감염환자 이후 병원에서, 군에서 감염자가 늘어 지난 3일 현재 국내 메르스 환자는 총 31명, 격리대상자도 1400여명으로 늘었다. 국민 불안이 고조되면서 정상적인 사회활동 역시 큰 차질을 빚고 있다. 휴교에 들어가는 학교가 500여개로 늘고, 일부 학원조차 휴원하고, 수학여행과 각종 집회도 하나 둘씩 취소되고 있다.

온갖 괴담이 퍼져도 정부가 무책임하게 손가락을 빠는 사이 근거 없는 처방법이 오르내리면서 방역용 마스크와 손세정제가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 대부분 병원에선 외래환자가 줄었다. 아픈 곳이 있어도 메르스 감염을 걱정해 그냥 참고 있단다. 많은 국민들이 감염병원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알권리’를 저버렸다.

우리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검은 장막에 쌓여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가 할 최선의 대응법은 위기의 내용과 심각성을 신속히 알려 각자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게 하고, 동시에 각 기관, 지자체의 역할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도록 체계를 잡고 지원하는 일이다. 국민 불안과 혼선은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하고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자제해달라고 촉구하지만, 당부로 될 것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초기대응에 실패했다고 비난 받고 있다. 물리적인 차단도 과제지만, 심리적인 차단, 즉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건 의료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손 씻기 등 개인위생에 노력하고, 발열 등 감기 증상이 있을 경우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의심 환자로 확인될 경우 즉각적인 진단과 격리치료가 필요한데 두려워말고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종합병원 전문가들이 나서 국내 의료수준이 폐와 신장 기능 저하 등 메르스와 관련된 증상관리에 최고수준이라고 설득해도 불안을 해소시키기에는 한계를 보인다. 적절한 타이밍에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근거와 이성적 판단을 아무리 제시한다 해도 ‘그래도 못 믿어’ 하면 소용이 없다. 정서적 특성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국민들은 어지간한 사건 사고가 발생해도 놀랄 정도로 매우 태연한 반응이지만, 일단 민감한 단어들이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어떤 설명도 신뢰하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는 우리 나라가 여전히 심각한 소통부재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보건복지 차원을 넘어 국민안전차원에서 비상사태 발생 시 정부와 관계기관, 국민의 대처 및 행동요령, 소통 프로세스들을 잘 정리해둬야 한다.

유언비어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평소 진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포용력(social inclusion)’을 우선시해 약자들을 위해 힘써야 한다.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으면 전부 다 잃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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