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포기했다. 공들인 ‘온실가스감축 로드맵’은 휴지가 됐고, 한국을 신뢰하고 지지해온 국제사회에 사기극을 벌인 꼴이 됐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대한민국 미래의 큰 먹거리 판을 깨 버렸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2년 기준으로 5억9300만 톤으로 세계 7위다. IPCC는 아시아 국가의 경우 2050년까지 2010년 기준 30~50% 감축을 권고했다.

정부는 2020년 이후 신기후체제 마련을 위한 온실가스 자발적감축목표(INDC)에서 2030년 BAU(온실가스 배출전망) 기준으로 네 가지 감축계획을 만들고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최종 감축 목표를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4가지 모두 국무회의에서 결정한 ‘로드맵’과 배치되며, 가장 강력하다는 4안(5억8463만CO₂톤 감축)조차 ‘녹색성장기본법’에서 정한 2020년 BAU 대비 30% 감축목표를 지킬 수 없어 법령까지 위반하게 됐다.

COP20에서 각국이 현재 감축 행동을 넘어서는 강화된 자발적 기여를 제출하도록 합의 한 ‘후퇴금지 원칙’도 깼다. OECD 회원국임과 동시에 G20 국가인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왔지만, 국제사회의 기후변화노력에 무임승차를 선언하면서 신뢰도 잃고, 기후변화 대응 불량국가로 전락하게 됐다.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대기업들이 보기엔 당장 BAU 대비 감축목표가 유리할 것 같아도 장기 경영전략을 세우기 어렵고 리스크에도 계속 노출된다는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금년 말 파리에서 열릴 COP21 회의를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예외로 두고 넘어갈 리가 없다. 갖은 압박과 손해를 겪다가 결국 부끄러운 모습으로 끌려 다닐 것이 뻔하다.

세계는 ‘지구촌(one global village)’이라고 불릴 만큼 가깝고 긴밀해졌다. 외교도 신뢰와 관계가 중요하다. 한국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COP15를 기점으로 녹색성장을 주창하고 기후변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표방했다. 녹색성장기본법을 만들고 나라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힘을 모으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의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불과 5년여 만에 모든 활동을 팽개쳐버린 것이다. 이제 한국은 매우 돌발적이고, 이기적이며, 신뢰하기 힘든 나라로 인식되면서 여러 분야에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세계와 함께 한 약속도 깨버리는 나라와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힘들게 경쟁하고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도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다. 녹색기술센터(GTC)의 위상도 애매해졌다. 짧은 세월동안 이룬 대한민국의 비약적 성장은 미래에 희망을 두고 고통을 감내하며 초인적인 노력을 경주한 결과였다.

세계가 함께 만들어가는 ‘기후변화 도전’역시 국내 산업계 현황에 맞춰 평가하고 계획할 일이 아니었다. BAU대비 전망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인으로서 책임지려는 자세가 우선돼야 했다. 미래에 기준을 두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급한 현실을 선택하고는 가능성을 포기했다. 기후변화는 ‘세계경제질서’를 새로이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한국은 무엇가지고 먹거리를 ‘창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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