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은퇴를 설렘으로 바꾸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은퇴 후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리고 그 꿈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가슴이 뛰는 일이라면 설렘이 생기리라고 생각한다. 꿈이라고 해서 너무 크고 거창하게만 생각할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버킷 리스트’ 같은 데서 출발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버킷 리스트는 말 그대로 하면 ‘bucket’은 ‘양동이’고 ‘list’는 ‘목록’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뜻하게 된 동기는 섬뜩하다. 중세 유럽에서 교수형을 시킬 때 사형수가 목에 밧줄을 두르고 엎어놓은 양동이 위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양동이를 발로 걷어차는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그래서 ‘죽다’의 속어가 양동이를 걷어찬다는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이 된 것이다.


이렇게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적은 목록이 됐다고 한다. 이 말이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았는데, 2007년에 미국에서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유명해졌다.


꿈이나 소원을 이루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검증된 게 그것을 이미지화하거나 문자로 쓰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버킷리스트를 직접 작성해 봄으로써 은퇴 후 멋진 일들을 계획해보면 좋겠다.


은퇴자들의 버킷리스트 중에는 멋지다 할 만한 것들이 많다.

여행은 버킷 리스트의 단골인데, ‘성지순례 여행하기’나 ‘오지 마을 봉사 여행하기’ 같이 구체적인 것을 본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어떠어떠한 분야의 전문서 쓰기 같은 것도 꽤 많다. 문화나 예술 쪽의 버킷 리스트도 있는데 예를 들어 색소폰을 배워서 독주회를 열기, 야생화 사진을 찍어서 전시회를 하기, 합창단 단원이 돼 어떤 무대에 서기 같은 것들이다. 사회봉사나 후세대 교육 등 가치를 염두에 둔 버킷 리스트도 매우 멋지게 느껴진다. 벽지 노인들에게 짜장면 500그릇 대접하기, 난치병에 걸린 한 어린이의 치료를 책임지기, 빈곤 가정 보일러를 몇 개 교체해주기 같은 내용을 보았는데 그분이 매우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버킷리스트는 거창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만 쓰는 건 아니다.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것들도 버킷 리스트에 포함되면 좋다. 영화 <버킷리스트>에는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같은 일도 있었다. 그런데 쉽게 할 수 있는 일로만 버킷 리스트가 짜이는 것보다는 시간이 좀 걸리고 어려운 일들도 들어 있는 게 좋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체가 은퇴를 설렘으로 바꾸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를 가족과 공유하자. 부부가 각각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서 서로 바꾸어 읽어보면 좋겠다. 그러면 부부간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자연스럽게 은퇴계획을 공유하게 된다. 자녀에게도 은퇴 후 버킷리스트를 보여주면 자녀가 부모를 이해하고 은퇴생활의 조력자가 되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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