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강다정 기자= 올해 상반기 요동치던 건설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공공건축물 기계설비 분리발주’다. 사실 기계설비 분리발주는 지난 2014년 국가계약법 시행령 및 지방계약법 시행령의 개정·시행을 통해 사업 단계부터 분리발주의 가능 여부를 검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것이 적용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규정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의회가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고, 이 과정에서 건설협회와 의회 사이에서는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건축물 기계설비 분리발주는 정부의 규제개혁 ‘손톱 밑 가시 빼기’가 될지 아니면 ‘건설업계의 일방적 희생’이 될지, 불공정 하도급 막자는 기계설비업계에 불어온 분리발주 조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건축물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기계설비 공사는 그간 하도급을 통해 공사가 진 됐지만 설계서가 별도로 작성되는 공사다. 설계서에는 설계도면, 공종별 물량내역서, 공사시방서, 현장설명서가 포함된다.
지방계약법은 시행령에 따라 기계설비공사의 분리발주를 가능하다고 한다. 기계설비 공사와 같이 분리발주 해도 하자책임 구분이 용이하고 공정관리에 지장이 없는 공사를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설계서가 별도로 작성되는 공사’로 명시했다. 이는 발주기관의 장이 고사의 예산편성과 기본설계 등 사업의 계획 단계부터 분리발주의 가능 여부를 검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기계설비 분리발주, 상위법 위반인가?

지난 4월 충청북도 의회는 공공건축물 기계설비 공사 분리발주 조례안을 수정 가결했다. 조례는 충북도회의 본회의를 통과해 제정·공포됐다. 이에 건설협회는 이 조례안이 사업비 증가와 공공건축물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실효성 없는 조례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조례가 공포되면서 청주시는 상당구청사 신축사업을 하면서 기계부문을 분리발주하는 공고를 충북조달청을 통해 냈다.
건설협회는 이 문제를 행정자치부에 의뢰해 답변을 받았다. 건설협회는 질의 요지를 통해 행자부에 ‘동일 구조물 공사 또는 단일공사로서 설계서 등에 따라 전체 사업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공사는 시기적으로 분리하거나 공사량을 분리하여 발주할 수 있다’는 내용이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계약법) 시행령 제77조에 위배되는 지를 물었다. 또 ‘건설공사의 예산편성과 기본설계 등 사업의 계획 단계부터 분리발주 가능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지방계약법 시행령 제77조를 위배되는지 여부도 함께 질의해 답변을 구했다.

행자부 ‘분리발주 위법한 것은 아니야’

행자부는 “전자의 내용은 해당 조례의 해석상 구체적인 분리 발주가능 여부에 대한 검토 없이 일반적으로 분리발주가 가능한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전체 사업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공사는 각 호에 따라 분리하여 발주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조문 수정을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어 “후자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분리발주가 가능한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사업의 계획 단계부터 각 호에 따라 분리발주 가능 여부를 검토하여야 한다’로 조문 수정을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 회신했다.
시의회는 이에 대해 ‘조례안 입법 후 수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건설협회는 ‘행자부가 조례를 잘못이라 판단했다’며 해석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했다.

기계설비 공사, 하자책임·공정관리 지장 없는 공사

건설협회는 시공상 원활한 공종연계 미흡에 따라 시설물의 안전 및 품질 확보 곤란, 전문공종별 공사 관리로 인한 발주자 업무 증가 및 예산 낭비, 해당 공사를 책임 시공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게 돼 업종·공종 간 하자책임 불분명에 따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리발주를 하게 되면 동종 간 유기적 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도급받은 개별 공종의 완성만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발주기관은 대부분 기계설비 공사 전문기술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자가 없는 경우에도 공사 감리를 운영해 공정관리에 지장이 없다. 또 하자 발생 시 보수는 실제 시공을 담당한 전문건설업체가 이행함으로 책임감을 강화할 수 있다. 국가가 감독하는 독자적인 전문보증기관을 통해 하자책임 발생 시 책임보상도 가능하다.

유통마진 줄여 예산 누수 현상 방지

국가의 조달업무는 전자조달로 업무가 수행돼 분리발주하게 되더라도 추가적 행정업무는 부담이 적은 편이다. 또, 건설유통구조를 한 단계 줄임으로써 공사비를 공사에 직접 투입해 예산 누수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분리발주를 통해 예산을 최대 5.5~6.3%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공사는 시공품질 향상을 위해 적정공사비를 반영하지만 한 단계를 더 거쳐 하도급 공사로 가게 되면 실제 가격은 무제한 최저가로 수행된다는 것이 업계의 귀띔이다.

위탁과정서 무리한 비용절감이 부른 ‘참사’

그동안 우리나라의 건설업계는 하도급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이것이 참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5월 H 건설의 경우 원전현장에서 고용부와 발주처에 신고하지 않고 3년간 하도급 업체 종사자 115명을 공상 처리해 문제가 됐다. 하도급 업체의 산재를 은폐한 것이다.
이는 원도급사인 종합건설업체가 정부공사 입찰 시 불이익, 산재 보험료 인상, 현장관리자의 인사상 불이익 등을 이유로 산재처리를 기피하고,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전문건설업체에 공상처리를 종용하는 등 ‘갑의 횡포’를 직접 보여준 사례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종합건설업체가 덤핑으로 수주해 전문건설업체에 저가 하도급 후 야기된 부실시공의 원인이 된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인명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온 국민의 가슴을 울린 ‘구의역 김군’ 사건 역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외주위탁업체직원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수사과정에서 원도급사의 무리한 비용절감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민주노총 산하의 기계설비 공사 분야와 관련된 플랜트 건설노조는 기계설비 공사 분리발주 시 불공정 하도급 거래 및 임금체불이 예방되고, 기계설비 건설공사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어 분리발주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분리발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예산효율성 기대

의회는 조례의 제정을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예산의 효율적 집행, 노동자 보호를 꾀한다. 발주처는 해당 공사에 유리한 발주방법을 선택하게 돼 효율적이다. 발주기관의 계약 담당자는 해당공사의 규모, 목적, 특성, 발주계획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고르게 된다. 분리발주를 선택하면 발주자와 생산자의 직거래 방식으로 발주자가 직접 기계설비 공사를 수행할 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하도급에 따른 직접공사비 누수현상이 발생되지 않고,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직거래 방식으로 저가 하도급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으며 불공정 하도급을 원척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지역 중소 기계설비 공사업체를 49% 이상 비율로 참여시킬 수 있어 지역 업체의 경쟁력 확보와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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