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색채와 빛의 조화로 자연을 표현한 윤우영 작가의 개인전 '색채를 사유하라'가 아트스페이스 호서
  에서 열렸다.

 

[환경일보] 서효림 기자 = 하루하루 전국이 요동치고 있다. 혼돈의 세계로 내몰린 국민은 마음 둘 곳을 잃었고, 연일 이어지는 소식에 힘도 잃었다.
이러한 시국에 난세에 나오는 영웅만큼이나 그리운 것이 바로 ‘쉴 곳’이다. 몸과 마음을 가장 편안히 누일 수 있는 태초의 공간. 엄마의 품같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부터 있었던 그러한 공간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이다.
지난 15일 막을 연 윤우영 작가의 개인전은 ‘최초의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인 아프리오리(a priori)와 생물체를 뜻하는 오가니즘(organism)을 바탕으로 빛과 색채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아크릴 그림의 공간이었다. <편집자 주>

꽃을 꽃답게 하는 것은 '의미부여'



서울 서초 아트스페이스 호서에서 열린 윤우영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은 ‘색채를 사유하라’를 주제로 본질적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됐다.
작가는 시인 김춘수의 ‘꽃’을 예로 들어 그림의 이름을 설명했다. 그는 그림을 ‘나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김춘수의 ‘꽃’은 꽃이라는 사물과 언어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사물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진정한 꽃이 됐다. 선행된 이미지를 텍스트화하고 완성된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림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갖는 것이다.



원하는 색을 얻을 때까지 이어지는 붓질

윤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끊임없는 색과의 전쟁’이라 표현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잠재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가장 적절한 음양의 조화를 이룰 때 내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색채를 표현하는 것은 고통을 끌어안는 것과 같아서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색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가벼움을 가진 아크릴 물감으로 원하는 색을 얻을 때까지 이어지는 작업의 시간은 물감의 색채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빛과 색채는 결국 공존해야 조화로워

그는 니체가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허무주의의 완성이라며 색을 완성하는 것이 색을 극복하려는 방법임을 은유적으로 설명했다.
미세한 빛의 존재는 색채에 가려져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색채의 난립은 미세한 빛으로도 그 존재감을 상실한다. 이는 빛과 색채의 공존에서 오는 어긋남을 의미한다. 하지만 빛과 색채는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하나 우위를 점하지 않을 때 빛과 색채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전시된 작품은 지구, 꽃, 공존과 조화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생명체를 다양한 색으로 다뤘다. 작가는 작업의 모티브를 오가니즘 즉, 생명체에서 찾았다. 자연이 주는 무한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생명체의 모습이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도 빛과 색채의 공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감정이입을 통해 무의식의 내면을 겉으로 내보이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다.

자연스럽게 표현된 구상의 기법

그는 대학 시절 추상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가 후에 구상미술로 작업을 전환했다. 작가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탈레스의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는 명제로 전환 과정을 설명했다. 대학원 졸업 논문에서 그는 물성표현에 의한 생명성의 형상화에 관해 연구했다.
추상 작업은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붓는 것을 통해 이뤄지는데 우연성을 가진 유기 이미지 형상은 때때로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나타난다. 작업하다 보면 우연히 만들어지는 형태가 구상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추상에서 구상으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에서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작업이 있었고, 특별한 이유나 동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구상으로 넘어간 것이라 작가는 설명했다.

생명체에 관한 관심은 환경으로 이어져



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최초의 것’인 아프리오리는 자연 친화를 바탕으로 한 회귀를 의미한다. 그는 동물이 때로는 생득적인 면에서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이는 모럴리스트인 몽테뉴가 자신의 저서 <수상록>에서 동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산업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의 문제를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라 말했다. 또한, 경제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세계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우위를 점하려는 강대국의 논리는 지구의 온난화가 생태계의 파괴속도를 더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지구와 자연에 대한 메시지는 생명체에 관한 관심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커진 병들어 아파하는 지구의 은근한 외침이다.

작은 관심과 실천이 가져올 놀라운 결과

작가는 일상생활에서의 소통을 통해 다양한 세계와 만나고 있다. 소통 속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직접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그는 “분리수거를 잘하고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는 것처럼 어렵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환경보호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실천은 비록 개개인의 작은 것이지만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모든 사람이 실천한다면 상상 이상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자연으로의 회귀가 주는 온전한 치유

애정을 담은 눈은 사물과 자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한 이름 붙임의 의미와 ‘나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존재로의 질문은 여러 갈등을 통해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사랑을 담은 눈으로 ‘최초의 것’에 관심을 가질 때 상처받은 영혼의 온전한 치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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