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구소 신형철 책임연구원

극지연구소 신형철 책임연구원

지구를 거의 반 바퀴 돌아 1만7000㎞를 넘게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남극세종과학기지는 우리나라 남극 탐사 활동의 첫 번째 관문이다. 백두산에서 한라산을 잇는 길이 있다면 거의 스무 배쯤 되는 여정이 될 먼 곳이다. 장마와 더불어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금 지구 반대편 남극은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여름에는 한밤에도 완전히 캄캄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네댓 시간 해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지구 끝자락에서 비스듬히 쬐는 햇볕을, 그나마 1년의 절반은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남극이 추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눈과 빙하가 햇빛의 대부분을 반사하기 때문에 남극 대륙 한복판의 고원 지대는 한겨울에 영하 70℃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다. 세종기지처럼 바다를 옆에 두고 있으면 그보다는 훨씬 따뜻하지만 차가운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겨울인 지금 영하 40~50℃까지 쉽게 내려간다.

남극의 추위는 바다도 얼어붙게 한다. 민물보다 훨씬 얼기 어려운 소금물을, 그것도 바람이 만들어 내는 파도가 계속 바다를 흔들어 댈 때에도 차가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얼린다니 그 찬 기운이 어마어마하다. 눈과 얼음이 남극을 지구의 다른 세상과 구별되게 하지만 이곳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를 만날 수 있다. 또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새끼를 낳아 대를 잇고, 경쟁하고 숨고 도망가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다.

얼어붙기 시작하는 겨울바다를 향해 해양조사를 떠나는 월동연구대      <사진제공=신형철 책임연구원>

이 남극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세종기지와 주변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세종기지가 처음 세워졌을 때에 비하면 빙벽이 녹고 주저앉아 계속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채우는 바다는 계속 넓어지는 중이다. 이 바다는 수많은 펭귄, 물개와 가끔 찾아오는 고래들의 생활 터전이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크기의 플랑크톤과 새우와 비슷한 모양의 크릴이 이들을 위한 먹이를 만들어 내는 복잡한 세상이다.

세종기지에서는 매일같이 날씨를 기록하고 대기와 바닷속의 온실 기체 변화를 조사하고 있다. 또 추위와 온갖 어려운 조건에 적응해서 번성하는 남극의 생물들이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빙벽 후퇴 과정을 설명하고 바닷속 생태계 요지경과 엄청난 증식을 보고하고, 새로운 생물종의 유전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지구 환경 변화와 그 영향은 인류의 미래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됐다. 지구별 전체의 변화 징조가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그 해답은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인류가 남극에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세종기지에서 1시간만 걸어가면 고래 뼈가 널려 있고 그 위로 100여 년의 세월을 견딘 이끼가 자라고 있다. 한 세기 전에 이곳에서 이뤄졌던 고래잡이의 흔적이다. 한때 고래잡이의 근거지였던 킹조지 섬에 지금은 8개 나라의 상주 과학 기지가 있다. 1970년대 후반 고래의 먹이로 널리 알려진 크릴을 잡기 위해 시험 조업에 나서면서 남극과 인연을 맺은 우리는 1988년 세종기지의 문을 열었다. 내년 2월이면 서른 돌을 맞이하니 이제 누구에게도 기댈 필요 없는 완전한 성년이 된다.

바다를 덮었던 얼음이 물러나고 봄과 함께 다시 찾아오는 펭귄      <사진제공=신형철 책임연구원>

지금도 세계 각국은 지구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는 창으로 남극을 연구하고, 아직은 모르지만 미래에 모습을 드러낼 잠재력을 미리 발견하기 위한 발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세계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구촌 가족으로 자기 몫과 역할을 당당하게 수행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가 남극을 망가뜨리지 않고 보전하면서 연구하는 것은 사람이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배우는 일이며, 지구의 미래를 기약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의 첫걸음에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있고 앞으로도 그 역할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