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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빛의 마술사, 모네힐빙학회 박헌렬 회장

세상 모든 물상(物象)은 햇빛으로 드러난다. 이 빛으로 수련을 그려 우리를 미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한 화가가 있다. 그는 “돌 하나도 빛에 따라 형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라고 설파했다. 바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과 공기에 따라 사물(事物)의 형상과 특징을 파악한 개척자이다. 또한 인상주의(impressionism)를 연 주요 인물이다. 그가 1872년 떠오르는 태양이 비추는 수면의 살랑거리는 물결과 배의 음양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 ‘인상’(impression)에서 인상파 사조가 유래됐기 때문이다. 모네는 파리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노르망디 ‘르 아브르’(Le Havre)에서 보냈고, 43세 때 파리 서쪽으로 70여 km 떨어진 지베르니(Giverny)에 정착했다.

작년 6월 중순, 파리 개선문에서 지베르니와 에트라타(Etrata)로 떠나는 현지 관광 일정에 참가했다. 파리 시청역에서 메트로(metro)를 타고 개선문으로 간다.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전철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인종 전시장 그대로다.

에트왈(etoile) 광장역에 내려 개선문으로 나간다. 개선문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때 조국을 위해 싸운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방사선 모양의 열두 개 도로가 개선문으로 수렴되는 이 곳에서 자동차로 한 바퀴 돌면서 자신이 원하는 도로로 빠져나가는 운전자는 운전을 무척 잘 하는 수준이란다. 개선문 주위 건물 위로 우뚝 선 에펠탑을 보면서 아내와 산책하던 1970년대 유학시절의 옛 추억이 아롱아롱했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여전히 많은 외국인들이 제각기 다른 의상에, 호기심어린 눈길로 걷는 낯익은 모습들이다.

관광버스는 지베르니로 떠난다. 화창한 날씨라 여정이 더욱 기대되었다. 튈르리 정원 귀퉁이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세계인들이 감격하고 있는 모네의 16 미터짜리 수련 연작을 본 지도 까마득하다. 듣기만 하던 모네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를 사십여 년 만에 찾게 되니 몹시 설렜지만 파리 ‘살롱 도똔느’전에 두 번 입선한 아내와 같이 볼 수 없어 서운했다.

그날이 주중임에도 독일과 화란에서 단체로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무성하게 우거진 식물과 수련 연못의 조화로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인부부, 이국적인 나무들과 하양, 진파랑, 연분홍 꽃들이 어우러진 정경을 감탄스런 눈빛으로 사진에 담는 사람들도 보인다. 마침 연못 중앙에 보트를 탄 젊은이는 지저분한 수초 부스러기를 걷어내며 연못을 가꾸고 있었다. “아, 저렇게 잘 가꾸어야 연못의 모습을 잘 유지할 수 있겠구나!”. ‘모네와 연못의 수련’이 바로 저것이로구나. 무척 한가롭고 평화스런 분위기에 나도, 모네가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깐 넋을 잃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연못을 바라보며 입을 딱 벌리고, 어떤 사람은 긴 잎자루와 꽃대를 내어 둥둥 떠 있는 분홍빛, 하얀 수련 꽃들을 응시하며 모네를 그리고 있는 듯한 모습 등 제각각이다.

모네는 “내가 유일하게 잘 하는 두 가지는 그림 그리는 것과 정원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연못과 꽃밭을 가꾸며 자연에 파묻혀 그리기에만 몰두했다. 봄에 피는 수선화도 수종에 따라 심는 시기가 다르면 피는 때가 다른 점을 관찰해, 여러 수종을 나눠 심어 즐겼다고 한다. 그는 자연의 섭리를 깨치며 생활한 자연주의자요, 위대한 화가요 훌륭한 정원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대의 기대 수명이 43세였을 때, 화가는 정원가꾸기와 그리기에 탐닉한 탓인지 86세까지 장수를 누리며 명작을 많이 남겼다.

모네는 연못 주위에 실가지를 축 늘어뜨린 버드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철쭉과 작약, 그리고 빽빽이 심은 대나무 숲과 같은 동양 식물들을 많이 심어 감상했다. 그는 연못을 거닐고, 수련이 자라는 모습과 식물생태계를 관찰하면서 “내 연못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발견했고. 즉시 팔레트를 집어 들었다."고 술회했다.

1897년부터 29년 동안 연못에 비치는 빛의 변화를 관찰하며 얻은 영감으로 그린 ‘수련’ 작품들이 200여 점이나 된다. 수련 이외에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날마다 시시각각 나타나는 빛의 흐름을 파악해 많은 연작을 남겼는데, 이를테면 ‘루앙 성당’, ‘영국 국회 의사당’ 등이 그것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들의 화려한 색채에 푹 빠졌던 모네. 그가 남긴 꽃밭에서 삼삼오오 유유히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꽃에 가까이 가 달곰한 향내를 맡는 사람들, 아름다운 꽃 옆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을 담으며 방긋하는 젊은 여성들의 자태는 내게 또 다른 기쁨을 안겼다. 자줏빛의 아이리스 꽃밭을 그린 작품 ‘지베르니의 정원’에서는 햇볕이 내리쬐는 부분과 나무 그늘에 가려진 곳의 색감을 달리하며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이 그림을 연상하듯 꽃밭에 절로 빠져드는 관람자들의 진지한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색채에 대한 집착과 열정이 대단한 모네도 말년에 “식물의 색감을 그대로 화폭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술회했다. 노르망디 해안과 지베르니에서 자연과 보낸 오랜 세월이 그를 ‘빛의 화가’요 ‘색채의 화가’로 부르게 했다. 그런 그도 어떤 색감으로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빛의 효과를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토로하곤 했다.

오묘한 빛의 세계로 이끈 모네의 훌륭한 작품들이 우리를 여전히 즐겁게 해주고, 지친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니 참 고맙다. 모네의 사물에 대한 빛의 효과를 나타낸 그의 작품들은 아인슈타인이나 천문학자들이 빛의 본질과 우주론을 밝히는 데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구촌에서 과학에 앞서서 이끌어가는 우리 예술가들도 많이 나오길 고대한다.

<글 / 힐빙학회 박헌렬 회장>

서효림 기자  shr8212@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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